[이인식의 과학생각]홈런풍년은 몸무게 덕?

  • 입력 2001년 11월 14일 18시 20분


스포츠에서 신기록 수립은 선수 개인의 영예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능력을 확장시킨 쾌거로 높이 평가된다. 올해 미국 프로야구에서 흑인인 배리 본즈(38·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73호 홈런으로 메이저리그 한 시즌 최다홈런 기록을 작성했을 때 야구팬들이 열광한 것도 그가 인간의 위대한 잠재력을 확인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美선수 평균체중 크게 늘어▼

메이저리그의 게임당 평균 홈런 수는 증가 일로에 있다. 1980년 1.47개, 1990년 1.58개, 2000년 2.34개로 가파른 상승세를 나타낸다. 더욱이 1998년에는 1961년 로저 매리스가 작성한 최다 홈런(61개) 기록이 무려 37년 만에 두 선수, 즉 마크 맥과이어(70개)와 새미 소사(66개)에 의해 깨짐에 따라 홈런이 양산되는 이유에 대해 다양한 분석이 시도되고 있다.

이를테면 일부 야구 해설가들은 메이저리그의 양적 팽창으로 수준급 투수의 공급이 원활치 못해 홈런이 난비할 수밖에 없다고 풀이한다. 단타와 도루에 만족했던 초창기와 달리 인기몰이에 급급한 타자들이 울타리 너머로 공을 넘기려고 안간힘을 쓰기 때문에 홈런이 갈수록 늘어난다는 지적도 있다. 이러한 분석에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선수들의 체중 증가에서 원인을 찾는 편이 훨씬 설득력이 높은 것 같다.

1980년대 후반부터 체중이 많이 나가면 야구장에서 던지고 달리는 데 필요한 유연성이 떨어진다는 오랜 상식이 잘못된 것으로 밝혀지면서 선수들은 경쟁적으로 몸 불리기에 나섰다. 미국 프로야구 선수의 평균 체중은 1900년대 78㎏, 1970년대 84㎏, 1990년대 89㎏으로 극적인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1960년대를 풍미했던 홈런 왕 행크 아론의 몸무게가 81㎏인데 비해 맥과이어는 112㎏, 소사는 99㎏의 거구들이다.

일부 스포츠 과학자들은 홈런 증가의 근본적인 원인은 야구공 자체에 있다고 주장한다. 온도와 습도가 공이 되튀는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밤새 오븐에 넣어둔 공과 냉장고에서 얼린 공을 높은 곳에서 낙하시켰는데, 따뜻한 공이 찬 공보다 두 배 높이 튀어 올랐다.

야구공은 미국 사회에서 몇 안 되는 변치 않는 물건 중 하나다. 1872년부터 야구공의 무게는 5온스, 원주는 9인치다. 중심에 있는 코르크를 두 겹의 고무가 둘러싼다. 고무는 실로 4번 감겨 있다. 처음 3번은 털실, 나머지 1번은 무명실이다. 야구공을 꿰맨 실밥은 108개다. 메이저리그에서 사용되는 공은 1977년부터 동일한 회사가 제조하고 있다.

미국 연구진은 1963년, 1970년, 1989년, 2000년에 사용된 공을 수거해 실험한 결과 공이 되튀어오르는 높이가 서로 다른 것을 확인했다.

동일한 규격으로 제조된 공의 탄성이 제각기 상이한 까닭은 고무를 감싼 실 때문인 것으로 짐작된다. 메이저리그 규정에 따르면 합성섬유인 폴리에스테르를 제한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데, 그 비율과 분포가 공마다 다른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털실은 습기를 빨아들이므로 공이 많이 튀지 못한다. 그러나 폴리에스테르는 물기를 흡수하지 않기 때문에 공의 탄성을 좋게 해서 털실 공보다 훨씬 멀리 날아가게 한다. 말하자면 단타 때의 공과 만루홈런 맞은 공은 서로 다를지 모른다는 것이다. 홈런이 투수나 타자의 능력 못지 않게 야구공의 재질에 달려 있다는 연구 결과는 아무래도 뒷맛이 개운치 않다.

▼"야구공 재질때문" 분석도▼

홈런에 열광하는 이유는 사람마다 제각각일 것이다. 서울 잠실야구장을 찾는 관중 속에는 야구공 실밥 108개에 세상만사 백팔번뇌를 실어 멀리 날려보내고 싶은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인생에서 역전승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일거에 승부를 뒤집는 홈런 한방처럼 매력적인 위안거리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홈런의 뒤안길에는 수모와 좌절의 주인공들이 있다. 2001년 메이저리그에서 20대의 한국 청년 2명이 홈런의 제물이 됐다. 본즈에게 시즌 최다홈런(71호)을 맞은 박찬호(28)와 월드 시리즈에서 이틀 연속 9회말 2사후 동점 2점 홈런을 허용한 김병현(22)이다. 그들은 아직 젊고 유능하다. ‘끝나는 순간까지 결코 끝난 게 아니다’라는 야구계의 명언을 되새기며 멋진 승부사로 새 출발하길 기대한다.

(과학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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