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추칼럼]테니스 2001 시즌 최후의 승자는?

  • 입력 2001년 11월 14일 13시 49분


September Eleven. 생각하기도 싫은 그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 때 순간적으로 미국에서 벌어지는 모든 종류의 스포츠는 그걸로 시즌이 끝날 거라고 안타까워 하며,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인 것이 테니스는 US Open을 끝으로 이제 아시아와 유럽으로 투어를 이동했으니 별 문제가 없을 거라고 쉽게 단정을 지었습니다.

아! 우째 그리도 naive 했을까나? 테러의 충격이 좀 가라 앉은 뒤 MLB, NFL은 곧 재개가 되었을 뿐 아니라 이번 World Series는 7차 전까지 가는 대 접전 끝에 TV 시청률 또한 10년 만에 최고였다고 하네요. 반면 가뜩이나 대회에 참가하기 싫어하는 비너스는 테러의 위험을 빙자(?)+손목 부상을 핑계로 유럽의 인도어 시즌을 통째로 날리더니, 급기야 탑 16위까지의 엘리트들이 겨루는 시즌 마지막 대회인 Championships(Munich) 마저 불참해 버리는 바람에 시즌 막판까지 벌이는 치열한 선두다툼을 기대한 많은 테니스 팬들에게 실망만 잔뜩 안기고야 말았습니다. (언제 철이 들려는지…)

뮌헨 챔피언쉽에서는 바로 일주일 전 힝기스를 밀어내고 정상에 선 제니퍼 캐프리어티가 그만 초반 탈락하는 불상사(?)가 생기는 바람에 그녀는 1주일 동안 누렸던 넘버 원의 자리를 결국 결승까지 올라간 다벤포트에게 내어 주어야만 했습니다. 어부지리(?)로 1위 자리에 come back한 다벤포트는 그러나, 무릎 부상이 갑자기 악화가 되어 세리나 윌리암스와 대결하기로 예정된 결승전을 기권해야만 했는데요, 뭐, 순위에는 변동이 없으나 시즌 마지막 토너먼트가 이렇게 이상하게 끝이 나 버린 건 찝찝한 일이죠.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끝난 WTA 2001년 시즌의 랭킹 순위는 1위 다벤포트, 2위 캐프리어티, 3위 비너스, 그리고 4위가 힝기스입니다. 뭔가 이상하죠? 그랜드 슬램 타이틀을 2개씩 가지고 있는 캐프리어티와 비너스가 2-3위고 타이틀이 하나도 없는 다벤포트가 1위?

WTA 랭킹 시스템에 모순이 있는 게 아니냐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는데요, 그렇다고 그랜드 슬램 이외의 대회에서 부진했던 제니퍼나, 평균 한 달에 한 개의 토너먼트를 나갈 까 말 까 하는 비너스, 둘 중의 하나가 1위 자격이 있어보이지도 않습니다. 물론 순전히 실력 면에서 봤을 땐 확실히 비너스가 가장 뛰어난 선수임에는 분명하지만 뭐, 자업자득이죠. 억울하다면 WTA 비즈니스에 도움이 되도록 성의를 좀 더 보여야 할 것입니다.

자, 어쨌든 이제 올 시즌은 시드니에서 열리는 ATP의 Tennis Masters Cup(이하 TMC) 하나만 남겨놓고 있습니다. 1970년부터 시작된 이 대회는 8명의 엘리트 선수들을 한 자리에 모아 놓고 최종 순위를 가르는 테니스의 포스트 시즌 대회인 셈인데요, 참가 자격은 20위 내에 든 그랜드 슬램 우승자들과 랭킹이 높은 순서대로 주어지게 됩니다. 가령 올해 고란 이바니셰비치는 윔블던 우승자이기도 하며 현재 13위에 랭크 되었기 때문에 참가 자격이 주어진 거죠. 나머지는 1위부터 7위까지 선수들이며 그 중 1-3위는 모두 그랜드 슬램 우승자들 입니다.

대회가 열리는 Sydney Super Dome은 작년 올림픽 체조 경기가 열렸던 장소인데요, indoor hard court 경기장입니다. Preview를 하기 전에 우선 인도어 테니스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드리죠.

실내 테니스는 70년대 이후 프로 테니스 대회 붐이 일어나면서 여기저기서 생기기 시작했는데요, 테니스장이 대부분 테니스 전용으로 지어 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surface는 금방 접어다 폈다 하는 카펫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죠. 시즌 마지막 마스터스 시리즈인 파리 대회가 대표적인 카펫 경기장입니다. 실내 카펫은 잔디 다음으로 빠른 surface입니다. 물론 카펫 밑에 깔린 재료가 뭐냐에 따라 스피드가 달라지지만요. 이를테면 시멘트 바닥 위의 카펫은 나무 바닥 위보다는 훨씬 빠릅니다. 인도어에서 카펫이 아닌 경우엔 이번 대회 surface처럼 그냥 하드 코트가 대부분인데 스피드는 카펫보다는 좀 느리다고 합니다.

인도어 경기를 할 때는 세 가지 장점이 있습니다. 첫째 햇빛이나 바람에 신경 쓸 일이 전혀 없다는 점, 일정한 조명과 산만하지 않은 background, 그리고 불규칙 바운스가 없다는 점입니다. 아무튼 인도어 대회는 surface가 빠른 편이고 바람의 방해를 받지 않기 때문에 강력한 서브를 가진 선수에게 유리한 조건이죠. 자, 그럼 surface 공부는 이것으로 마치고 테니스 마스터스 컵이란 어떤 대회인지, 올해의 final eight은 어떤 선수들인지, 또 그들의 올 시즌 성적과 TMC 우승 가능성에 대해 한번 전망해 보겠습니다.

테니스 마스터스 컵은 보통 토너먼트하고는 다른 방식으로 경기를 치릅니다. 네 명이 한조가 돼서 라운드 로빈 매치를 한 후에, 각 조에서 성적 순으로 두 명이 준결승전에 올라 토너먼트를 치루게 됩니다. 이번 대회에서는 Kuerten, Ferrero, Kafelnikov, Ivanisevic가 한 조고, Hewitt, Agassi, Rafter, Gorsjean이 나머지 조에 편성되어 있는데요, 예선 (라운드 로빈)에서 매치 하나를 승리한 경우 20점을 따게 되어 있습니다. 준결승전에서 승리하면 40점이 추가 되고 마지막 승자는 50점을 가져갑니다. 결승에 오른 두 선수는 그러니까 총 5 경기를 치루게 되어 있는데요, 전부 이겼을 경우 150점을 따게 되는 거죠.

대부분의 테니스 팬들은 ‘누가 우승 트로피를 손에 쥐느냐’는 것 보다는 ‘누가 올 시즌을 넘버 원으로 마감하느냐’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대회 우승과 넘버 원 자리는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현재 1위를 달리고 있는 Kuerten과 그 뒤를 바짝 추격하고 있는 Hewitt과 Agassi 두 사람 다 이 대회의 성적에 따라 1위 자리를 지킬 수도 빼앗을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그럼 대회 출전한 8명의 선수들의 올 시즌 성적과 우승 가능성에 대해 하나하나 살펴 보기로 하겠습니다.

1. Gustavo Kuerten (771점)

23개 대회 참가, 75매치, 60승 15패

타이틀 : 6 (AT&T, Mexican Open, 몬테 카를로 TMS, Roland Garros, 신시네티 TMS)

그 밖의 그랜드 슬램 성적 : US Open 8강

US Open 이후 1회전 탈락 3번을 포함 1승 4패로 부진함을 보였습니다. 역시 인도어 경기는 그의 체질에 맞지 않는 것 같네요. 작년의 ‘기적’과 같은 승리를 또 다시 재현해 낼 수 있을지… 1위 자리를 지켜야 하는 입장인 ‘구가’는 아무래도 작년 보다 더 많은 부담을 안고 경기에 임할 듯 합니다.

2. Lleyton Hewitt (723점)

28개 대회 참가, 91매치, 74승 17패

타이틀 : 5 (Adidas International, Stella Artois, Heineken Trophy, US Open, Japan Open)

10월 중순에 열린 독일 슈트트가르트 TMS에서 만약 그가 결승전에만 올라갔어도 그는 랭킹 1위로서 시드니에 입성했을 텐데요, 그만 준결승전에서 탈락하는 바람에 아직(?) 근소한 차이로 ‘구가’를 추격하고 있습니다. 그가 이 대회에서 우승하면 무조건 넘버 원은 그의 것이 됩니다. 그렇게 된다면 현재 20세인 휴잇은 최연소 시즌 넘버 원의 자리에 오르게 되는 겁니다. 호주 관중들의 일방적인 응원에다, 컨디션 좋겠다, 자신감 있겠다… 그를 우승 후보 1순위에 올려 놓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죠.

3. Andre Agassi (684점)

18개 대회 참가, 57매치, 44승 13패

타이틀 : 4 (호주 오픈, Indian Wells TMS, Ericsson Open, Mercedez-Benz Cup)

그 밖의 그랜드 슬램 성적 : Roland Garros 8강, Wimbledon 4강, US Open 8강

US Open이후 2개 대회에 참가해서 모두 1회전 탈락, 즉 2패를 기록한 애거씨는 아마 시즌 넘버 원 자리에 오를 가망성이 ZERO였다면 이 대회에 불참했었을 겁니다. 막 태어난 그의 아들과 아내 슈테피 곁에 있고 싶었겠죠. 그가 만약 여기서 우승+시즌 넘버 원이 된다면 이 보다 더 훌륭한 선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가 이를 악 물고 라켓을 휘둘러도 놀라지 마십쇼.

4. Juan Carlos Ferrero (568점)

25개 대회 참가, 74매치, 54승 18패

타이틀 : 4 (두바이 오픈, 에스토릴 오픈, 바르셀로나, 로마 TMS)

그랜드 슬램 성적: Roland Garros 4강

역시 올해도 클레이 코트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페레로. 물론 한 개의 하드 코트 타이틀(두바이)을 챙기긴 했지만 Roland Garros가 끝난 6월 초 이후 그는 별 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가 라운드 로빈 세 경기에서 모두 진다고 해도 충격 받을 테니스 팬들은 아마 거의 없을 걸요.

5. Yefgeny Kafelnikov (558점)

34개 대회 참가, 93매치, 66승 27패

타이틀 : 2 (마르세이유, 크레믈린 컵)

그 밖의 주목할 만한 성적 : US Open 4강, 파리 TMS 준우승

이 아저씨가 올해 참가한 대회와 매치 수를 좀 보십쇼. 다른 선수들은 보통 25개 내외의 대회를 출전하는 데 반해 그는 무려 34개 대회에다 93 매치를 치렀으니…!!! Y2K는 가능한 많은 대회에 참가하는 걸 인생의 목표로 사는 선수로 테니스 팬들에게 알려져 있는데요, 그랜드 슬램 대회 기간인 2주 동안을 제외하곤 매주 꼬박꼬박 대회에 나가는 것 같습니다. 호텔 생활이 지겹지도 않은지, 원… 아무튼 엄청난 스태미너의 소유자인 것만은 분명하지요? 호주에서는 늘 성적이 좋았던(99호주 오픈 우승, 시드니 올림픽 금메달 등) Y2K니만큼 적어도 예선을 통과할 가능성은 많아보이는군요.

6. Patrick Rafter (557점)

20개 대회 참가, 62매치, 47승 15패

타이틀 : 1 (RCA Championship)

그 밖의 주목할 만한 전적 : 호주 오픈 4강, Wimbledon, 캐나다 TMS, 신시내티 TMS 모두 준우승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의사를 비친 래프터! 따라서 이번이 그의 마지막 ATP 대회가 될 것이 거의 확실한데요, 그러니 홈 팬들이 휴잇 보다도 래프터의 우승을 더욱 갈망하고 있는 건 당연한 일이겠죠. 그렇게 된다면 야 얼마나 좋겠습니까! BUT 래프터는 US Open 이후 단 한 개의 ATP 대회에도 참가하지 않아서 경기 감각이 없는데다 인도어에서 잘하는 선수도 아니니 그의 우승 가능성은 별로 많지 않아보입니다.

7. Sebastien Grosjean (478점)

27개 대회 참가, 70매치, 48승 22패

타이틀 : 1 (파리 TMS)

그랜드 슬램 성적 : 호주 오픈 4강, Roland Garros 4강

올 시즌 전반기 두 개의 그랜드 슬램 준결승 전에 오른 것과는 대조적으로 후반기를 평범하게 보낸 그로장은 시즌 마지막 TMS에서 우승함으로써 상승세를 타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조에 있는 두 명의 호주 선수들과의 매치를 2주 후 호주에서 열리는 데이비스 컵 결승전의 리허설이라 치고 부담 없이 경기를 한다면 의외로 좋은 결과가 있을 지도 모르죠.

8. Goran Ivanisevic (322점)

23개 대회 참가, 48매치, 28승 20패

타이틀 : 1 (Wimbledon)

고란의 현재 랭킹은 13위지만 윔블던 우승자이기 때문에 이번 대회 참가 자격을 갖게 되었습니다. ATP Champions Race 8위에 오른 선수는 슈트트가르트 TMS 우승을 포함 4개 대회 타이틀을 차지한 독일의 Tommy Haas인데요, 그만한 자격을 갖춘 선수가 출전을 못하게 된 것은 여러모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어쨌든 96년 이후 처음으로 포스트 시즌에 등장한 고란이 어떤 모습을 보여줄 지 궁금하군요. 당연한 소리지만 ‘모든 것은 그의 서브에 달려 있다’ 외엔 할말이 없습니다. 인도어 하드 코트니까 그에게 불리하진 않을 것 같습니다만…

Epilogue

내년 Tennis Masters Cup은 원래 브라질의 사웅 파울로에서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요, 어쩐 일인지 올 시즌 중반에 ATP는 샹하이로 장소를 바꿨습니다. 언젠가 우리나라에서 이 대회가 열리기를 은근히 희망했던 저로서는 힘이 좀 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긴 제가 ATP CEO라고 해도 한국보다는 중국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겠습니다. 이미 샹하이와 홍콩, 두 도시에서 해마다 ATP 토너먼트가 열리고 있고, 그것도 모자라서 러시아에게 크레믈린 컵을 양보하라고 떼를 쓰는 중국이니, 시장 규모로 보나 테니스에 대한 관심도로 보나 ATP가 이 나라에 투자를 하는 건 당연한 일이겠죠. 여러분들 앞으로 몇 년 후 Wimbledon이나 US Open에서 중국 선수들이 선전하는 거 보시면 놀라지 마시길… ^^

자료제공: 후추닷컴

http://www.hooc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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