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최화경/종군기자

  • 입력 2001년 11월 13일 18시 28분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1972년 6월8일, 폭격으로 불바다가 된 마을에서 어린 소녀가 뛰쳐나온다. 불길을 피해 벌거숭이로 내달리며 울부짖는 처절한 모습은 종군기자의 카메라에 잡혀 베트남전쟁의 참상을 세계에 전하는 계기가 됐다. 미국에서 반전 분위기가 촉발돼 종전이 앞당겨진 것도 이 사진 때문이다. 사진 속의 소녀는 열살 난 판 틴 킴 퍽. 이 장면을 찍은 당시 AP통신 기자 후잉 콩 우트(베트남인)는 이듬해 이 사진으로 퓰리처상을 받는다.

▷1853년 영국의 윌리엄 러셀은 ‘더타임스’ 종군기자로 크림전쟁을 취재했다. 그는 프랑스 수녀들의 헌신적인 봉사에 감동해 ‘왜 우리에게는 자비로운 천사가 없는가’라는 기사를 썼는데 나이팅게일이 바로 이 신문을 보고 ‘백의의 천사’가 됐다고 한다. 이처럼 전장을 전하는 한 장의 사진, 한 줄의 기사가 역사를 바꾼 경우는 많다. 이 점이 종군기자의 ‘매력’이기도 하다. 영국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은 ‘데일리그래픽’과 ‘모닝포스트’의 종군기자로 이름을 날렸고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1차 세계대전과 스페인내란 때 종군기자로 활약했다. 불후의 명작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와 ‘무기여 잘 있거라’는 그때의 경험에서 나왔다.

▷위험을 무릅쓰는 기자정신을 가리켜 ‘카파이즘’이라고 한다. 이것은 전설적인 종군기자 로베르트 카파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스페인내란 때인 1938년 라이프지 표지를 장식한 사진 ‘병사의 죽음’이 바로 그의 작품이다. 참호에서 뛰어나오던 병사가 적탄을 맞고 쓰러지는 순간 그는 바로 곁에 있었다. 그가 남긴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멀리서 찍었기 때문’이라는 말에서 섬뜩한 프로정신을 느낀다.

▷전쟁의 한복판을 쫓아다니는 종군기자는 늘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있다. 앞에서 말한 카파는 1954년 베트남 독립전쟁에서 지뢰를 밟아 생을 마감했고 한국전쟁 때는 종군기자 18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흘 전에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취재 중이던 프랑스와 독일 기자 3명이 숨지고 한 명은 실종됐다고 한다. 목숨과 맞바꾼 치열한 기자정신이다.

<최화경논설위원>bb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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