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권순택/'브레이크 없는 권력'

  • 입력 2001년 11월 4일 19시 06분


전체 국회의원의 1%밖에 안되는 단 3명의 의원을 뽑은 재·보선 결과가 집권당과 청와대를 벼랑끝 위기로 내몰고 있다.

평소 야당과 언론이 비리의혹을 제기하며 그들의 이름을 영문 이니셜로만 거론해도 의리를 과시하며 감싸주던 ‘동지’ 들이 그들의 정계은퇴까지 요구하고 있다. 기가 막힐 노릇일 터이다. 귓속말을 나눌 정도로 믿었던 한겨레신문 기자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폭로’ 로 정권의 사활을 건 ‘언론사 정기 세무조사’ 의 실체까지 드러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정권의 유효기간이 1년 넘게 남은 지금에 와서야 사단이 벌어져도 크게 벌어졌지만 브레이크 없는 권력의 위기는 애초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야당이나 비판언론이 아니라 바로 자신들의 동지들로부터 정계은퇴 대상으로 지목된 정권 핵심 인사들이 받고 있는 ‘혐의’ 의 핵심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비리의혹’ 과 ‘인사개입’ 이다. 그것이 민심이반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대선 당시 특별검사제와 인사청문회 도입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집권 후 그 공약은 없었던 일이 됐다. 특검제는 야당 시절 국회에 법안까지 제출했었는데도 말이다. 특검제 공약은 ‘야당 시절의 판단 잘못’ 이라는 말로 결국 ‘속임수’ 였음을 고백했다. 그리고는 권력기관들을 ‘그래도 믿을 수 있는’ 특정지역 사람들에게 맡겼다. 스스로 권력의 분산과 권력간 견제 기능을 마비시킨 것이다.

그러니 권력자들에게 두려울 것이 무엇이 있었겠는가. 오로지 대통령에게 충성하고 끼리끼리 봐주고 배신만 하지 않으면 겁날게 없을 일이 아닌가.

그들은 자신들에 대한 개혁은 고스란히 성역으로 남겨뒀다. 그러고도 ‘개혁 정권’ 을 자임하며 국민과 언론을 실험 대상으로 하는 개혁에는 열심이었다. 하지만 개혁에 대한 다수 국민의 평가는 잘됐다는 쪽보다는 그 반대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권력을 실험 대상으로 한 내세울만한 개혁을 한 적이 있는가. 아니 시도라도 한 적이 있는가.

특검제와 인사청문회 도입은 권력에 대한 개혁의 기본이다.

인사청문회 제도가 있었다면 정권을 위기로 몰아넣은 그런 법무장관이 나올 수 있었을까. 서울 강남에 수십억원 규모의 패밀리타운을 건설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는 사람이 국세청장이란 막중한 자리에 임명될 수 있었겠는가.

검찰 간부들의 희망이 검찰총장이라면 그렇게 쉽게 권력의 눈치나 보고 부끄러운 처신을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국세청장이 되겠다는 엘리트 국세청 간부들이 권력의 하수인 노릇을 쉽게 할 수 있었을까.

정치적 의혹사건이나 권력이 비리의혹의 대상인 사건에 대해 언제든지 수사할 수 있는 상시적 특검제가 도입됐다면 그렇게 많은 비리의혹이 제기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비리의혹만 제기하면 ‘고소만이 살 길’ 이라고 외치는 인사들에게 묻고 싶다. 그렇게 떳떳하다면 특검을 두려워할 일이 무엇인가. 국가정보원장도 아닌 국정원 단장을 구속하는 것도 몸을 사려야 할 정도의 검찰이라면 애당초 그들이 겁낼 대상도 아니었겠지만.

특검제와 인사청문회가 권력을 위험에 빠뜨린다는 생각은 잘못이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대권’ 을 노리는 정치인이라면, 그것이 결국 난폭하게 질주하려는 속성을 가진 권력의 브레이크요, 안전장치란 점을 알아야 한다.

권순택<사회1부장>maypo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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