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일수/'카인의 標'

  • 입력 2001년 11월 4일 19시 06분


여야 국회의원 155명이 사형제도 폐지 특별법안을 정기국회에 제출했다. 서명한 의원이 재적의원 과반수를 훨씬 넘어 법안통과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법안의 주요 취지는 사형은 헌법에 보장된 인간의 존엄성, 생명권 등에 비춰볼 때 자가당착이며 또한 범죄자의 개선이나 교화, 사회복귀 가능성을 원천 봉쇄하는 것이므로 사형 관련 모든 형사법 조항은 폐지돼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생명가치를 신성시하는 사상은 필연적으로 사형 폐지 쪽으로 이어진다. 기독교 천주교 불교 등 종교계가 사형 폐지에 앞장서고 있는 건 이 때문이다. 아무리 흉악한 살인자라도 사형은 그보다 더 잔혹하고 비인도적이며 인간의 존엄을 깎아내리는 제도라는 것이다. 게다가 오판, 인종적 사회적 차별과 편견이 개재될 위험도 높다. 하지만 사형 존치론자들의 주장 또한 완고하다. 가정파괴범, 떼강도 같은 흉악 범죄에 대한 사형은 사회안정에 기여함은 물론 살인자는 생명으로 죗값을 치러야 세상의 이치와도 맞는다는 것이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범죄를 억제한다’는 통념에 비추어볼 때 사형 폐지는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충격을 초래하리라는 것이다.

▷흉악 범죄에 대한 억지책으로 사형을 내세우지만 실제로 그럴까? 빈번한 공개처형에도 밀수와 마약, 뇌물 범죄가 줄어들지 않는 중국의 현실은 그게 아님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살인자는 죽음으로 속죄해야 한다는 응보형 논리도 설득력이 약해 보인다. 흉악 범죄에도 복합적인 원인이 있다. 흉악범의 자기책임 외에 사회적인 공동책임의 몫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흉악 범죄에 대한 공동책임의 몫을 범죄자 개인에게만 지우고 죽음으로써 속죄하라는 것은 바리새적 정의일 뿐 법적 정의는 아니다.

▷법적 정의에는 진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비와 사랑의 뿌리도 있다. 사랑 없는 정의는 폭력에 지나지 않는다. 인류 최초의 살인자 카인에게 신은 사형틀을 들이대지 않았다. 오히려 피묻은 땅의 저주와 유리방랑의 벌을 내리면서 보복살해의 위험을 면할 구원의 표를 주었다. 우리에게도 이제 카인의 후예들에게 카인의 표를 되찾아 줄 때가 온 것일까.

김일수 객원논설위원(고려대 교수·법학)

ilsukim@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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