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황호택/스카치 위스키

  • 입력 2001년 10월 30일 18시 41분


영국 사람들은 여왕과 총리에서부터 장관 의회의원에 이르기까지 한국을 찾거나 국제회의에서 한국 관리들을 만나면 으레 위스키 이야기를 꺼낸다. 위스키 관세율을 낮춰 달라거나 시장의 장벽을 없애 달라는 요구를 한다. 위스키 산업은 영국에서 국제 경쟁력이 가장 강한 산업이다. 세계적인 동반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서 위스키 수입이 작년에 비해 40% 가까이 늘어 스카치 위스키 회사들이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

▷스카치 위스키의 맛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보리, 술통, 물, 증류소에서 사용하는 이탄(泥炭), 창고에서 술을 익히는 방법에 따라 맛과 향이 달라진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도 스카치 위스키의 풍미와 향취를 완전히 설명할 수는 없다. 술이 숙성되는 동안 술통이 숨을 쉬면서 머금는 갯바람은 물론 스코틀랜드 사람들의 성격과 생활양식까지 술맛 속에 배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스코틀랜드에서 제조한 위스키가 아니면 결코 그 맛과 향을 흉내낼 수 없다는 말이다.

▷미국과 유럽 사람들도 위스키를 좋아하지만 한국의 주당들이 마시는 방식과는 사뭇 다르다. 미묘한 술맛의 차이를 감별하며 즐긴다. 조니워커 블랙의 부드러운 맛은 로버트 드니로보다 캐리 그랜트에 비유되기도 한다. 드니로는 터프한 인상의 성격파 배우이고 그랜트는 여성들에게 인기가 높은 귀공자 타입의 배우이다. 스카치 위스키를 즐기는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밸런타인 17년산을 맥주에 섞어 폭탄주로 마시는 것을 보면 뒤로 넘어질 일이다. 좋은 술이 한국에 와서 소주 취급을 받는다.

▷경제가 어렵다고 야단인데 무슨 접대가 그렇게 많고 위스키 소비량은 왜 그렇게 급격히 늘어나는지 모를 일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고급 승용차, 골프채, 위스키 등 사치성 소비재의 수입이 전반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펑펑 까는 양주병에서 달러가 새어나가 무역수지를 악화시키고 기업들의 제조원가가 덩달아 높아진다. 폭탄주가 몇 순배 돌고 비몽사몽의 경지에 접어들면 호텔에서 94만원 받는 밸런타인 30년산이나 슈퍼에서 파는 섬싱스페셜이나 마찬가지다. 이쯤 되면 축 나느니 건강이다.

<황호택논설위원>hthwa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