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병락교수의 이야기경제학-21]미국의 재벌 보호

  • 입력 2001년 10월 21일 18시 53분


문어발식 확장으로 비난 받는 한국의 재벌. 이러한 스타일의 기업이 미국에도 있는가.

미국 공정거래위원이었던 에프엠 셔러 하버드대 교수는 그 대표적인 기업이 제너럴일렉트릭(GE)사라고 했다. ‘포천’지 특집기사에 따르면 GE는 업종이 20여개고 자회사 GE캐피털의 업종도 28개다. GE는 ‘포천’지가 선정하는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리스트’에서 3년 연속 1등이다. GE는 문어발 확장이라고도 할 수 있는 다각화에 성공한 기업이다. GE의 자산은 지난해 말 현재 4400억달러로 한국의 30대그룹 624개회사의 총자산 3400억달러보다 훨씬 많다. GE가 재벌이라면 재벌 중의 재벌, 곧 ‘왕(王)재벌’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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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한국의 전국경제인연합회 같은 단체가 미국에도 있는가. 셔러 교수는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이 그런 단체라고 했다. 미국이 세계500대 기업 중 185개나 차지하고, 대 중 소기업을 고르게 발전시키며, 경쟁력이 약한 산업이 하나도 없다고 할 정도의 이른바 비즈니스 천국이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하버드대에서 얼마 전 외국인들에게 미국사회와 문화를 가르치는데 사용된 책인 에드워드 커니의 ‘미국 식(式)’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기업인이나 경영인이 영웅대접을 받았다. 저개발국에서 기업인이 ‘범죄자’ 혹은 도덕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사람 취급받는 것과는 반대다. 또 미국의 비즈니스환경은 세계에서 가장 좋다. 일류대학이 배출하는 세계최고 인재를 바로 쓸 수 있다는 점에서도 미국기업들은 ‘복 받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미국기업들은 여러 차원에서 보호도 받는다. 우선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 등 스스로 많은 단체들을 조직해 보호받는다. 국제비즈니스협의회는 세계무역기구(WTO)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를 상대로 미국기업을 위한 로비를 한다. 미국상공회의소는 기업이익을 대변하는 세계 최대의 상공회의소다. 여러 종류의 싱크탱크(think tanks)를 만들어서 이들의 보호도 받는다. 귀에 익은 미국기업연구소 헤리티지재단, 브루킹스연구소, 국제경제연구소 등이 그 예다.

미국기업들은 자신들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세계적인 미국 금융회사들의 도움도 음으로 양으로 받는다. 자신들의 돈이 적잖게 사용된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 WTO 등 국제기구의 보호도 받는다. 앨런 그린스펀, 피터 드러커 같은 세계일류 정책담당자나 기업경영학 전문가의 코치도 받는다.

미국정부는 기업규제를 많이 하지 않는다. 해외문제도 미국 국익 중심으로 풀어가는데 ‘국익’ 중 큰 것이 기업이익이다. 미국 경제체제를 자유기업 경제체제라고도 하는데 기업을 철저히 장려하고 보호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자산규모가 일정액이 넘는 기업집단은 ‘대규모기업집단’으로 지정돼 각종 규제를 받는 것과 대조된다.

재벌의 일본말은 ‘자이바쓰’인데 인터넷시대의 자이바쓰를 네바쓰(Netbatsu)라고 한다.‘비즈니스위크’지는 특집기사에서 아시아 제일의 부자인 손정의 소프트방크회장은 현재 600여 개의 회사에 투자하고 있는데, 앞으로 모두 800여개 회사에 투자해 세계적인 네바쓰를 창설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어느 경제학 교수가 한국에서는 ‘재벌’이라는 단어 때문에 대기업들이 보호는커녕 비난받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사실 사람에 따라서는 재벌의 뜻을 다르게 이해하는 것 같다. ‘재벌 아들의 병역기피 의혹’이라고 할 때의 재벌은 돈 많은 개인, ‘재벌 해체’라고 할 때의 재벌은 기업집단을 의미한다. 대기업, 대규모 가족기업, 지주회사를 재벌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 교수는 “대기업이 재벌이라면 선진국은 재벌 국가”라고 했다.

한국의 법은 기업집단을 인정하고 있다. 국가차원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혼동하는 재벌이란 말을 사용하지 말든지, 사용할 때는 그 뜻을 분명히 한 후 사용해야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미국기업들과 글로벌경쟁을 하는 우리 기업들도 미국수준의 보호와 기업환경을 누려야 할 것 아닌가 한다.(서울대 경제학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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