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김정원/북한은 속히 테러와 결별해야

  • 입력 2001년 9월 29일 17시 42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초강대국으로 등장한 미국은 항상 테러의 표적이 돼 왔다. 미국은 자구책으로 ‘불량국가’ 리스트를 만들어 테러를 직접 저질렀거나 후원한 전력이 있는 국가에 제재를 가하고 예의 주시해왔다.

미국에서 테러 참사가 터지자 미국과 원수로 지내온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은 서둘러 애도를 표했다. 이라크에서도 대규모 추모 기도회가 열렸으며 북한도 조의를 표했다. 이들 국가의 발빠른 움직임은 반인륜적 대규모 참사라는 사건의 결과보다는 이번 테러가 남긴 불확실성에 기인한 것이다.

단죄 대상이 모호한 이번 사건은 미국에 양날의 칼을 쥐어주었다. 한편으로는 얼굴 없는 적과 싸워야 하는 과업을 짊어졌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이 합리적 논리로 적절한 증거만 제시하면 테러와 관련된 그 어떤 상대라도 응징할 수 있는 여지를 준 것이다.

왜조지W부시미국대통령은오사마 빈 라덴이나 탈레반 정권뿐만 아니라 테러범을 은닉하거나 지원하는 모든 국가를 미국의 적대국(hostile regime)으로 간주한 것일까. 미국은 자신이 처한 딜레마를 이용해 더 큰 계산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 정부는 국가 행정조직까지 개편해 테러대책부를 신설하고 테러에 비중을 실었다. 국제적으로는 테러참사로 큰 피해를 본 영국 호주 같은 지지국들을 규합해 전지구적 반테러리즘 캠페인을 통해 외교 첩보 법률 돈 무기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강구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미국의 경제전문 격주간지 포브스는 불길한 뉴스를 전했다. 탈레반 정권의 지지세력으로 북한을 지목하고, 탈레반에 대한 북한의 미사일 기술 전수 의혹을 제기했다. 미국과 테러, 불량국가 북한 사이에 서 있는 한국은 미묘한 입장에 처하게 된 것이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정부는 대한항공 여객기 폭파사건을 민족 내부 문제로 규정하면서 북한을 불량국가 리스트에서 삭제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러나 더 이상 북한의 테러는 민족 내부의 문제로 한정할 수 없는 국제적 환경이 조성됐다.

국제사회에서 북한은 대한항공 여객기 폭파사건 이전부터 국제 테러범을 양성하는 훈련기지를 제공하고 무기를 유통시키는 등 국제 테러에 깊숙이 관여했다고 알려져 있다. 몇 개월 전 미국 국무부가 발간한 테러백서에는 북한이 미국과 테러회담을 진행하면서도 몇 년간 직간접적으로 테러집단에 무기를 판매하는 이중작전을 써왔다고 명시돼 있다.

따라서 한국 정부가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북한이 테러조직에 무기를 팔고 그들과 연대하는 것을 못 본 척한다면 북한은 미국을 필두로 테러 반대 캠페인에 동참하는 연합군의 표적이 될 수도 있다.

테러가 국제안보의 가장 큰 위협으로 등장한 이상 북한이 과거 테러에 대해 시인, 사과하고 책임자를 처벌하고 모든 국제 반테러협약에 가입하는 것은 남북대화의 선결조건이 돼야 한다. 북한이 테러와 하루 속히 결별하지 않으면 한반도 평화는 보장될 수 없다.

김정원(세종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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