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곽중철/뉴스 동시통역 왜 어려운가

  • 입력 2001년 9월 23일 18시 44분


미국에서 전대미문의 테러사건이 발생하자 1991년 걸프전에 이어 미국의 CNN이 다시 각광을 받고 있다. 그러나 국내 TV 방송사들은 CNN의 생중계를 동시통역하는 데 애를 먹었다. 방송사들은 우선 이번 테러가 한밤중에 터지는 바람에 통역사를 확보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 때문에 일부 방송사는 특파원 출신의 기자나 자체 고용한 통역사를 투입해 급한 불을 끄면서 유능한 통역사 확보에 나서기도 했다.

TV를 지켜본 시청자들 중에는 통역이 엉망이다, 영어 잘하는 사람이 그렇게도 없느냐고 하면서 분통을 터뜨린 분이 많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영어를 잘하는 것과 통역을 잘하는 것은 별개이다.

걸프전 때도 통역사를 못 구해 유명 영어학원 원장까지 동원했지만 실패했다. 한국에 통역대학원이 생긴지 20년이 넘고 1000명이 넘는 영어통역 전공자가 배출됐는데 왜 이런 현상이 생길까. 그것은 CNN 뉴스 통역이 가장 어려운 통역에 속하기 때문이다. CNN 통역이 어려운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CNN의 긴급뉴스는 불시에 터진 일이기 때문에 통역을 준비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국제회의 통역만 해도 최소한 며칠 전 통역을 의뢰 받고 연설문을 입수해 내용을 파악할 수 있지만 긴급뉴스는 예측이 안 된다.

둘째, 뉴스 통역은 기자나 앵커의 말을 통역해야 하기 때문에 뉴스에서 사용하는 언론 용어를 잘 알아야 제대로 할 수 있다. 하지만 통역사가 갑자기 기자가 될 수 없기 때문에 마이크 앞에서 입이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뉴스 통역사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양성해야 하는 것이다.

테러사건이 발생한 첫날 밤 일부 방송사는 영어에 능통한 기자들이 직접 통역을 맡아 눈부신 활약을 보여주었다. 그들이 통역사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은 이유는 언론 용어를 노련하게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2일 오전 9시반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성명이 생중계될 때에는 신참 통역사들이 밤새 일하면서 감을 잡아 방송사간 우열을 가리기 어려웠다.

CNN의 한국 내 송출을 위임받은 CSTV Korea의 통역은 국내 방송사들이 내보낸 통역과는 많은 차이가 났다. 금년 초 유료로 전환한 케이블 방송의 CNN 채널은 7월부터 하루에 몇 차례씩 정시 뉴스 동시통역을 시험방송 형식으로 내보내고 있다. 여기서 통역하는 4명의 통역사도 금년 초 통역대학원을 졸업한 신참들이다. 그들은 금년 초부터 CNN 뉴스를 연구했고 7월부터는 실전 경험도 쌓았기 때문에 사건 발생 당일에도 훨씬 안정된 통역을 할 수 있었다.

테러사건 와중에 통역사 구인 소동을 지켜보면서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CSTV의 통역팀을 보강해 필요할 때 밤을 새워서라도 통역을 할 수 있게 하고 나머지 방송사는 원할 때 CSTV의 통역을 받아 활용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긴급사태가 벌어질 때마다 통역사를 급히 구하는 수고도 덜 수 있고 똑같은 CNN 뉴스를 통역하려고 방송사마다 비싼 돈을 들여 통역사를 임시 고용하는 낭비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곽중철(한국외국어대 통역번역센터 책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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