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의혹의 안개 너무 짙다

  • 입력 2001년 9월 18일 18시 49분


검찰이 구체적인 혐의를 포착하고 수사에 착수했다가 석연치 못한 이유로 갑자기 덮어버리거나 용두사미로 흐지부지해 버리는 사건이 꼬리를 물고 있어 국민은 어지러울 지경이다.

긴급체포영장으로 연행해 수사를 벌이다가 하루만에 풀어주고 1년여 만에 다시 수사를 해 같은 혐의로 구속한 이용호씨 사건의 처리 과정은 상식에 비추어 납득하기 어렵다. 횡령 액수도 자그마치 250억원이다. 오죽하면 법사위 국정감사에서 민주당 의원들조차 검찰 수사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나서겠는가.

최경원(崔慶元) 법무부 장관이 신분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성역 없이 수사해 진상을 규명하라고 검찰에 지시했다니 일단 문제점을 인정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대검이 검찰수사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저해하는 폭로와 보도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은 상황 인식이 제대로 안돼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야당의 폭로와 언론 보도를 탓하기에 앞서 검찰이 권력형 의혹사건에서 과연 공정성을 유지하고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도록 수사를 하고 처리를 했는지 스스로 되돌아볼 일이다. 이용호씨 사건과 관련한 검찰의 수사는 누가 보더라도 공정성을 현저하게 잃었고 투명하지도 못했다.

동방금고로부터 거액을 받은 혐의를 받은 국가정보원 간부에 대한 수사도 덮어주기 의혹이 일고 있다. 검찰은 사건 보도가 나온 뒤 언론사 탈세사건으로 수사가 늦어졌다고 해명하고 보강수사를 벌이겠다고 밝혔다. 검찰 해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더라도 동방금고 사건이 터져 관련자들이 구속된 것은 작년 말인데 여태까지 수사를 질질 끌다니 이해하기 어렵다. 정현준씨 사건 등 얼마 전 발생한 권력형 사건들도 국민의 의혹을 풀어주기에는 수사가 미흡했다. 정권 안보와 관련한 사건은 신속 철저하게 수사하고 권력형 사건은 축소 또는 지연수사를 한다면 검찰이 공정성과 신뢰성을 갖춘 조직으로 바로 서기 어렵다.

이용호씨 사건에 대해서는 금융감독원이나 국세청도 제때 조사를 하지 않고 미온적으로 처리한 의혹을 받는다. 힘있는 기관들이 이렇게 맥을 못 췄으니 배후설이 나오는 것이다.

검찰이 축소수사를 벌이다 국정조사와 특별검사 수사까지 받았던 옷로비 사건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최 장관이 언명한 대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성역 없는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 의혹의 안개를 말끔히 걷어내지 않으면 이 같은 권력형 의혹 사건은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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