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최화경/휴대전화

  • 입력 2001년 9월 17일 18시 35분


휴대전화가 우리나라에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후반이었던 것 같다. 처음 나온 휴대전화를 떠올리면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덩치가 지금 것보다 두세 배는 실히 되는 데다 무게도 만만치 않아 주머니가 축 처지곤 했으니까. 그래도 당시 휴대전화는 부의 척도나 다름없었다. 한 대 장만하려면 수백만원이 들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휴대전화가 집과 자동차에 이어 ‘재산목록 3호’라는 말도 그래서 나왔고 커피숍 같은 데서 척 꺼내드는 사람에게는 늘 부러운 시선이 따라다녔다.

▷그때부터 20년이 채 안 된 지금 휴대전화는 더 이상 부러움의 대상이 아니다. 아니, 없는 사람이 오히려 부끄럽다고 해야 맞을 지경이다. 우리나라 20대와 30대의 휴대전화 보급률은 90%가 넘고 10대도 10명 중 8명이 갖고 있다고 한다. 초등학생까지도 생일선물로 휴대전화쯤은 받아야 직성이 풀린다니 더 할 말이 없다. 손바닥 안에 쏙 들어올 만큼 깜찍한 크기는 이제 보통이고 컬러 액정화면까지 등장했다. 어디 그뿐인가. 휴대전화로 사진도 찍고 찍은 사진을 전송까지 하는 세상이다. 공중전화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은 요즘은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이다.

▷그러다 보니 후유증도 만만치 않다. 극장이나 공연장 등에서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는 벨소리에 절로 짜증이 이는가 하면 버스 승객끼리 “시끄럽다” “무슨 상관이냐”며 다투다 드잡이까지 벌이는 판이다. 턱없이 많이 나오는 전화요금 때문에 집집마다 부모 자식간에 신경전을 벌인다니 ‘휴대전화가 원수’라는 푸념이 나올 만도 하다.

▷그런 차에 뉴욕 세계무역센터 테러 희생자들의 애절한 ‘마지막 전화’가 심금을 울린다. 너무도 갑작스레 죽음을 맞아야 했던 그들은 휴대전화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하직 인사를 남기고 떠났다. 비행기 화장실에 숨어 테러범의 모습과 긴박했던 기내 상황을 알린 용감한 행동도 휴대전화 덕분에 가능했다. 무너진 건물 더미에 깔렸다가 구조대에 전화해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사람도 3명이나 된다고 하니 휴대전화의 소중함과 고마움이 새삼 가슴에 와 닿는다. ‘뭐든 쓰기 나름’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최화경논설위원>bbcho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