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미늘의 끝' 낚시바늘에 꿰인 욕망의 세계

  • 입력 2001년 9월 14일 18시 35분


▼'미늘의 끝' 안정효 소설집/438쪽 9000원/들녘▼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에 발표된 ‘미늘’의 상큼함을 기억하는 독자라면, 이번에 발간된 안정효 소설집 ‘미늘의 끝’에 대한 문학적 호기심을 당연히 지니게 되리라. 정확히 10년의 간격을 두고, ‘미늘’의 후속작에 해당되는 ‘미늘의 끝’이 발표되었다는 점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비평적 탐색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미늘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미늘 연작을 발표한 작가 안정효의 속마음은 무엇인가? 작가 자신의 설명에 의하면, ‘미늘’은 “고기가 걸리면 낚싯바늘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만들어 놓은 거스러미를 뜻하는 우리말”이다.

작가는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우리네 운명적인 욕망을 ‘미늘’이라는 상징을 통해 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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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늘 연작의 주요 등장인물들은 마치 낚시를 위해서 태어난 것처럼, 목숨까지 걸면서 위태로운 낚시에 빠진다. 그 자체가 ‘미늘’에 구속된 인생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미늘의 끝’에서 서구찬 사장이 파멸을 예감하면서도 수미라는 여인과 불륜에 빠지는 것도 ‘인생의 미늘’이라고 이름붙일 수 있을 것이다.

누군들 자신의 인생에서 미늘이라고 칭할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집착과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보통 사람들의 경우, 그 욕망과 집착을 적당히 억제하면서 현실과의 타협을 도모하지만, ‘미늘’ 연작의 등장인물들은 그 욕망의 벼랑 끝간데까지 가본다는 점에서 여느 사람들과 구별된다.

가령, ‘미늘의 끝’에서 서구찬과 수미의 관계는 “잠시 스쳐 지나갈 우연한 관계라고 쉽게 생각했던 만남의 시작이 내 인생에 박혀 들기 시작한 미늘인 줄을 전혀 알지도 못하면서 말입니다”라고 얘기될 정도로 사소하게 시작되지만, 결국 그들의 관계는 서로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면서 급기야는 서구찬의 죽음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이 작품은 낚시에서나 인생에서나 치명적인 미늘에 꿰인 모든 존재의 끝은 죽음으로 귀결된다는 사실을 서늘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이 소설을 단순한 도덕적 지평에서 읽는 것은 명백한 오독일 것이다. 차라리 ‘미늘의 끝’은 욕망이라는 미늘에 구속되어버린 사람들의 상처를 투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다만, 전작 ‘미늘’에 비해서 한층 통속성이 강화된 ‘미늘의 끝’의 서사가 그 상처의 자연스러움과 밀도를 훼손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해두기로 하자.

모든 후속작의 운명이 전작의 문제성(미늘)에서 얼마나 진전되었느냐 하는 척도로 평가될 수 있다면, 이러한 의미에서 “‘미늘의 끝’은 ‘미늘’이라는 전작의 ‘미늘’에서 얼마나 자유로운가”라는 물음을 던져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소설가야말로 인생이라는 ‘미늘’로 인해 생성된 환부를 들여다보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 미늘이 치명적일수록 소설도 그만큼 깊어지리라.

권성우(문학비평가·동덕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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