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골구조 건물 큰 불 앞에선 흐물흐물

  • 입력 2001년 9월 13일 18시 47분


철근콘크리트 구조인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은 무사했지만 철골구조 무역센터는 무너졌다.
철근콘크리트 구조인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무사했지만
철골구조 무역센터는 무너졌다.
현대건축의 상징물이었던 세계무역센터가 폭파되듯 수직으로 힘없이 주저앉았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열에 약한 철골구조 건물의 안전성 재검토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텔레비전 화면과 세계무역센터 구조도를 분석한 국내외 건축가들은 붕괴의 결정적 원인은 충돌이 아니라 화재에 취약한 철골구조물의 강도가 급격히 저하됐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50층급 철골조 주상복합건물이 서울 강남과 보라매공원, 분당 일산 등 수도권 신도시에 우후죽순 처럼 들어서고 있다.

서울 강남 도곡동에 건설된 대림아크로빌, 타워팰리스 등도 일부 코어부분은 철근콘크리트이지만 나머지 대부분의 기둥과 보가 철골조이다. 또 롯데는 107층 짜리 초고층 호텔을 철골조로 건설 중이다.

무너진 세계무역센터도 대표적 철골구조물이다. 기둥과 보 그리고 바닥이 모두 쇠인 철골구조는 지진 바람에는 잘 견디지만 열에 약한 게 흠이다.

경남대 이철호 교수는 “철골구조의 강도는 500℃에서는 절반, 800℃에서는 10분의 1로 떨어진다”고 말한다. 불이 나면 철골구조물은 대장간의 쇠처럼 붉게 달궈져 흐물흐물해진다. 그 온도가 대략 800℃이다.

전우구조건축사무소 윤흠학 이사는 “국내 초고층 철골건물은 화재나 가스 폭발에 대비해 불이 나도 3시간 동안은 버틸 수 있게 내화피복을 하고 있지만, 콘크리트 건물에 비해 대형 화재에 취약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세계무역센터는 불이 나도 2∼3시간은 붕괴되지 않게 설계됐다. 대피할 시간적 여유를 주기 위해서이다. 이를 위해 철골구조물에 3㎜ 두께로 내화용 질석 피복을 입혔다.

하지만 보스턴을 이륙해 미국 서부도시로 각각 향하던 납치 여객기들은 수십t의 항공유를 채우고 있었다. 폭발한 항공유는 ‘미사일 효과’를 내 엄청난 화재가 일어났고, 철골과 이음매는 빠른 속도로 녹아 내려 오래 견디지 못했다.

반면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같은 전통적 철근콘크리트건물은 콘크리트가 철근을 에워싸고 있어 화재에 강하다. 성균관대 이동근 교수는 “철근콘크리트건물인 대연각호텔도 무너지지 않았고,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도 1945년 안개로 길을 잃은 B25폭격기가 79층을 들이받아 구멍이 뚫리고 불이 났지만 무너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서울대 홍성걸 교수는 “세계무역센터가 폭파해체공법 때처럼 무너졌기 때문에 폭탄이 터져 붕괴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충돌과 화재로 약화된 중간층의 철골조 기둥이 무너지면서 상부층의 건물 더미가 그 밑으로 떨어져 연쇄붕괴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삼풍백화점도 대표적인 연쇄붕괴의 사례. 맨 위층 바닥이 옥상의 공조시설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밑층으로 주저앉고, 그 낙하 하중이 다시 그 아래층을 무너뜨리면서 연쇄붕괴됐다.

홍 교수는 “세계무역센터는 건물의 외벽에 1m 간격으로 촘촘히 기둥을 박고 엘리베이터가 있는 코어부분 외에는 기둥이 없는 ‘튜브구조’여서 수직 하중에 약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튜브구조는 풍압, 지진 등 횡하중에 강하고, 사무실 유효면적을 넓힐 수 있어 초고층건물에 자주 이용되고 있다.

전봉수 전우구조건축사무소장은 “철골구조는 화재에 약하고 바닥의 떨림현상이 심하며, 단열과 경제성이 철근콘크리트 구조보다 떨어져, 요즘 건축계에서는 주거용 건물로 적합치 않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다”고 말했다. 전 소장은 세계무역센터를 본떠 튜브식 철골구조로 LG 쌍둥이 빌딩을 설계한 바 있다.

<신동호동아사이언스기자>dong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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