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전진우/'마지막 전화'

  • 입력 2001년 9월 13일 18시 41분


“납치범들은 붉은 두건을 쓴 3명의 아랍인이야. 폭탄이 들어 있다는 붉은 상자와 칼을 들고 있어. 우리 몇몇이 납치범에게 저항하려고 결심했어. 여보, 행복하게 살아. 3개월 된 우리 딸 잘 키워주기 바라.”

“우리 모두가 죽게 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어. 우리 가운데 3명이 무슨 조치를 취하려 하고 있어. 여보, 당신을 사랑해.”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여객기 충돌 테러로 화염에 휩싸인 지 한 시간 남짓 지난 시각에 유나이티드항공 93편은 펜실베이니아 피츠버그 상공을 날고 있었다. 3명의 테러범과 45명의 탑승객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모른다. 다만 2명의 승객이 부인에게 건 짧은 전화통화 내용이 남았을 뿐이다. 비행기가 들판에 추락한 것은 그들이 ‘마지막 전화’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로마 황제이자 철학자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그의 ‘명상록’에서 “인생은 순간이며 모든 것이 순식간에 주검으로 굳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하나 아무리 그렇다고 한들 너무도 갑작스레, 너무도 어처구니없이 다가온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단 말인가. 3개월 된 어린 딸을 두고, 사랑하는 아내를 두고. 하여 그들은 떨리는 손가락으로 휴대전화 번호를 눌렀을 것이다. 그리고 숨죽여 생의 ‘마지막 전화’를 했을 터이다. ‘행복하게 살아, 우리 딸 부탁해, 당신을 사랑해’라고.

▷세상의 어떤 이데올로기가, 어떤 종교가, 어떤 문명간 갈등과 증오가 한 사내의 아내 사랑, 딸 사랑을 이렇듯 참혹하게 단절시킬 수 있는가. 아내와 어린 딸에게 견딜 수 없는 고통과 슬픔을 강요할 수 있는가. 영문도 모르고 죽어간 수만의 영혼 앞에 그 어떤 테러의 명분을 둘러댈 수 있겠는가.

▷그러나 팔레스타인 난민촌에서는 환호가 터져나왔다고 한다. 이스라엘에 대한 자살 테러를 자원하는 청년들이 줄을 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성전(聖戰)과 순교(殉敎)’를 외친다. 진정 문명의 충돌이 다가오고 있는 것인가. 얼마나 더 많이 ‘마지막 전화’를 걸어야 한단 말인가.

<전진우논설위원>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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