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동네]김윤식 교수 정년 퇴임 강연을 다녀와서

  • 입력 2001년 9월 13일 16시 59분


김윤식(65) 서울대 국문과 교수의 정년 퇴임강연이 11일 오후 3시 서울대학교 박물관 강당에서 열렸습니다. 이 자리에는 조동일 교수 등 30년 가까이 함께 강단을 지킨 동료 학자, "나를 죽여라"는 열정적인 강의로 국문학에 입문한 정호웅 권성우 성민엽 최혜실 등 후배 평론가, 그리고 김 교수의 세심한 비평의 수혜를 입은 신경숙 은희경 함정임 등 젊은 작가들이 참석했습니다. 박완서 현기영 같은 원로급(?) 소설가들도 일찌감치 자리를 잡고 계시더군요. 그보다 눈에 가득한 것은 김 교수의 마지막 일성을 듣기위해 몰려든 200명이 넘는 재학생들이었습니다. 똘망똘망한 눈을 가진 이들로 200명 정원인 강의실은 통로까지 차고 넘쳤고, 많은 학생들이 출입문에서 까치발로 귀동냥을 해야만 했습니다. 김 교수는 퇴임강연의 제목을 그가 정신적인 충격을 받았다고 소개한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의 한구절에서 빌려온 '갈수 있고, 가야할 길, 가버린 길'이라고 정했습니다. 부제를 '어느 저능아의 심경 고백'라고 붙여서 후학들을 당혹스럽게 하더군요. 이 자리에서 김 교수는 100여권이란 기록적인 저서를 통해 현대문학 연구에서 굵은 획을 남기기까지 겪었던 인간적인 고뇌를 처음으로 학생들 앞에서 털어놓았습니다. 강의 모두에 "1936년 경남 진영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를 글쓰기로 인도한 것은 '외로움'과 '일본 교과서' 그리고 일제 근대교육 정신인 '물질 경시, 문화숭배 사상'이었다"고 고백(?)하시더군요. 글을 쓰고 싶어 서울대 사범대학에 입학했지만 작가의 꿈을 접고 국문학에 빠져들었던 자신의 처지를 "아무도 수심(水深)을 가르쳐주지 않았기에 겁도 없이 청무밭인가 하고 날아든 흰나비꼴"이라었다고 설명하셨습니다. 김 교수는 지금까지 업적을 정리하면서 "사람들은 나의 글쓰기를 현장비평이라 부르지만 나에겐 '징후비평'에 불과하다"면서 "실상 이것은 기술이지 독창적인 발견일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대화체 논문체 묘사체 등 다양한 스타일의 글쓰기를 시도한 것에 대해서도 "남들이 읽으면 '제 멋대로'라고 하겠지만 나에게는 작품이 담고 있는 징후를 발견하기 위한 필사적인 길찾기였다"고 설명하시더군요. 하지만 남들이 필적하기 힘든 업적을 남기고 30여년 만에 교정을 떠나게 된 노교수에게도 회한이 없지는 않은 듯 싶었습니다. 사르트르의 글을 빌어, 그는 어릴적부터 꿈꾸었던 독창적인 글쓰기를 이루지 못하고 남의 작품에 대한 평을 쓰는 자신의 모습을 "묘지기"에 비유했다. 또 "모든 이론은 회색이고 생명의 황금나무만이 녹색이다"는 '파우스트'의 구절을 인용하며 지금까지의 학문적 성취를 모두 '헛것'이 아닌가라는 회의마저 들었다고 말하시더군요. 이런 고민을 겪고 있던 김 교수가 들려준 최근의 인상적인 경험은 "소설은 소설가보다 위대하다"는 쿤데라의 말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한밤중에 서재 한 귀퉁이에서 무슨 기척이 들리지 않겠습니까. 다름아닌 제가 쓴 책이 저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만든 피조물인 그들이 세계의 질서 속으로 들어가 언제가 죽을 운명인 저를 아주 불쌍한 듯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김 교수는 이런 감회를 "한 때 그토록 휘황했던 빛이 / 영영 내 눈에서 사라졌을 지라도 / 우리는 슬퍼 말지니라, 그 뒤에 남아 있는 / 힘을 찾을 수 있기에"라는 워스워스의 시를 인용해 설명하시더군요. 그리고 "매순간 최선을 다했다면 어릴적부터 그토록 갈망해온 '표현자'의 세계로 나가갈 수 있는 힘이 되지 않겠는가"라는 말로 '희미한 희망'을 표현하시더군요. 김 교수는 한 시간 가까운 고별강의를 끝내면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다행이었다고, 문학을 했기에 그나마 다행이었다고. 예언자가 없더라도 이제는 고유한 죽음을 죽을 수 있을 것 같다." 고. 강단을 내려오는 노 교수의 등뒤로 뜨거운 박수가 오래 이어졌습니다. <윤정훈 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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