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노형/‘뉴라운드’ 협상 적극 나서자

  • 입력 2001년 9월 11일 18시 39분


7월말 세계무역기구(WTO) 일반이사회의 비공식회의에서는 11월 9∼13일 카타르 도하에서 출범할 예정인 뉴라운드의 ‘실현성 점검’(reality check)이 이루어졌다. 1999년 11월 미국 시애틀의 제3차 각료회의 당시 유례 없이 격렬했던 비정부기구(NGO)의 반세계화 운동으로 뉴라운드 출범은 외견상 실패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실패 이유는 뉴라운드 의제 등에 대한 회원국들의 입장이 충분히 조율되지 않았던 데에 있다. 따라서 이후 약 1년8개월 동안 WTO에서는 유럽연합(EU) 일본 한국 등을 중심으로 뉴라운드 출범에 대한 개도국들의 신뢰 구축을 위한 작업이 진행됐다.

그러나 7월말 개최된 일반이사회의 실현성 점검회의 내용을 검토하면 11월 뉴라운드의 출범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회원국들이 뉴라운드의 필요성과 의제에 대해 종래의 입장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EU는 뉴라운드 출범의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지만 이들 사이에도 농업과 환경문제에 대한 입장 차이는 여전하다. 더 큰 문제는 회원국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개도국들이 뉴라운드의 존재 자체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총의에 따라 의사를 결정하는 WTO에서 개도국이 반대하면 뉴라운드는 출범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이미 진행 중인 농업과 서비스에 대한 협상만 수행하게 된다.

국내총생산(GDP)의 70% 정도를 무역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에서 뉴라운드를 통한 자유무역의 확대와 다자규범의 보완은 생존의 절대적 조건이 된다. 따라서 11월의 각료회의에서 뉴라운드는 출범해야 하며, 의제도 한국의 국익에 보탬이 되는 것이어야 한다. 특히 반덤핑 규범의 보완이 의제로 채택돼야 한다. 한국 상품이 미국은 물론 동남아시아, 남미에서 반덤핑조치의 제재를 심하게 받고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더욱 그렇다.

이러한 목표는 뉴라운드가 출범해야만 이룰 수 있다. 따라서 한국의 당면 과제는 뉴라운 출범 그 자체이다. 이 때문에 WTO 체제에서 별다른 이익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뉴라운드를 거부하는 후발 개도국들이 뉴라운드를 긍정적으로 수용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상징적으로 이번 뉴라운드를 개발라운드(Development Round)로 명명해 뉴라운드가 개도국들을 위해 수행될 것이라는 의지를 보여줄 수도 있을 것이다.

실질적으로도 이번 뉴라운드에서는 개도국들이 문제라고 주장하는 현 체제의 문제점들을 깊이 있게 다뤄야 한다. 다행히 7월31일 WTO 상품무역이사회는 말레이시아와 멕시코 등 일부 개도국들에 무역 관련 투자협정의 이행을 2년 내지 4년 유예하는 결정을 채택했다. 개도국들을 참여시키려면 뉴라운드에서도 이처럼 개도국들에 유리한 결과가 도출돼야 한다.

개도국들은 대체로 선진국이 바라는 것과는 달리 환경, 경쟁정책, 투자 등의 새로운 이슈들이 의제로 채택되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 개도국들이 끝내 새로운 이슈 채택에 반대한다면 새로운 이슈는 원하는 회원국들끼리만 협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WTO는 예외적으로 일부 회원국들 사이에서만 적용되는 규범을 복수국간 협정을 통해 채택할 수 있게 한다. 정부 구매협정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따라서 무역과 관련된 환경, 경쟁정책, 투자 등의 문제를 복수국간 협정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도 현실적인 대안이 될 것이다.

이와 함께 뉴라운드 출범이 실패하거나 의제 설정이 한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에 대비해 주요 수출시장 국가와의 양자적 또는 지역적 협력을 모색해야 한다. 21세기의 불안정한 다자무역 체제를 고려할 때 여러 지역 또는 국가와의 자유무역협정 체결은 불가피한 현실이다.

마이크 무어 WTO 사무총장은 회원국 대표들에게 여름 휴가기간에 입장 차이를 조율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따라 각 회원국의 통상담당 부서는 여름의 무더위를 잊고 대책을 짜냈을 것이다. 정부는 뉴라운드라는 장이 설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동시에 한국의 입장을 다른 회원국들이 수용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할 때이다.

박노형(고려대 교수·법학

고대 통상법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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