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권순활/규제 고집하는 공정위

  • 입력 2001년 9월 9일 19시 06분


공정거래위원회는 요즘 ‘기업규제 추가 완화는 부당하다’고 홍보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이에는 주요 간부들의 외부 강연이나 언론기고도 적극 활용된다.

공정위는 사회적 공감을 폭넓게 얻고 있는 규제완화 촉구를 ‘대기업 봐주기’로까지 몰아붙이고 있다. 이남기 위원장은 최근 한 강연에서 “시장규율 메커니즘이 성숙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대기업 관련 제도의 급격한 변화가 바람직하지 않고 대기업집단의 요구에 따른 정책변경은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이러다 보니 여야(與野) 정치권과 정부가 규제를 대폭 풀기로 합의했지만 관계부처간 실무작업은 여전히 답보상태다. 재정경제부 등은 “시대변화에 맞춰 대기업 규제를 과감히 풀자”고 촉구하지만 공정위가 버티고 있어 이견이 좁혀지지 않는다. 과거 경제기획원 공정거래실에서 한솥밥을 먹은 경험이 있는 공무원들조차 “아무리 ‘밥그릇 지키기’라 하더라도 저렇게 생각이 굳을 수 있나”며 고개를 내젓는다.

민간쪽 반응은 더 차갑다. 박용성 대한상의 회장은 “출자총액 제한 제도 등이 기업의 신규 투자를 가로막는 주요 원인이라는 것은 상식”이라고 말했다. 양수길 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는 “정부는 토대만 조성하고 기업이 자율적으로 경영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새 시대의 경제 패러다임”이라고 강조한다.

물론 기업들이 내부적으로 더 노력해야 할 점도 있다. 그러나 현정부가 밀어붙인 빅딜의 실패에서 보듯 정부가 ‘시장 실패’를 이유로 과도하게 개입할 때 생기는 ‘정책 실패’의 후유증은 더 클 것이다.

정부여당 일각에 대기업 규제 유지를 ‘개혁’으로 착각하는 시각이 남아있는 현실도 걱정스럽다. 족쇄 같은 규제에 묶여 기업들의 활력이 시들어 버리는데도 ‘정책 권력’이 누리는 규제의 맛은 달기만 할까. 정부가 시대에 맞지 않는 기업규제를 무기로 시장 위에 군림하는 경제체제를 완전한 시장경제로 볼 수 있을 것인가.

권순활<경제부>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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