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37세 생 마감한 류요우칭의 죽기전 일기 '사망일기'

  • 입력 2001년 9월 7일 18시 31분


◇ 사망 일기/류요우칭(陸幼靑) 지음/329쪽 8500원 롱셀러

지난해 37세의 짧은 생을 마감한 중국인 류요우칭이 불치의 위암으로 죽기전 100일 동안 쓴 감동적인 일기다. 당시 중국의 유명 문학웹사이트 룽수(www.rongshu.com)에 그날그날 공개돼 수많은 중국인들의 가슴을 울린 사실은 국내 신문에도 널리 보도됐다.

상하이 교회의 구석진 방에서, 병색으로 파리해진 한 남자가 좋아하는 중화 담배와 산소 발생기를 옆에 둔 채 홀로 컴퓨터 앉아 일기를 쓴다. 생의 남은 시간은 3000시간도 되지 않는데 몇백시간을 들여 일기를 쓰기로 결정하기까지 ‘마치 평생 부은 적금을 찾아들고 백화점에서 물건을 고르고 있는 사람’(8월 4일)의 심정이었다고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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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 시계를 보니 정각 6시, 세수를 하고 담배를 하나 피워 물었다. 방금 우려낸 룽징(龍井)차가 식기를 기다렸다가 그대로 소파에서 잠이 들었다. 깨어나보니 이미 7시다.’(8월 7일) 의식을 까마득히 잃어본 경험은 처음이다. 이제 자기 시간조차도 통제하지 못하다니, 심한 자괴감에 빠진다.

‘아프리카 원시림에서 매년 종의 대이동이 발생한다. 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은 바로 대이동 중인 대열의 낙오자인 셈이다. 누구도 원망할 필요는 없다. 모두 자연의 준엄한 법칙일 뿐이다. 어느 누구도 종착지에 도달할 수는 없다. 어느 누구든 대열에서 멈춰서야만 하는 날이 있게 마련이다.’(8월 13일) 체념에 익숙해진다. 사람이 집을 떠나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이 집을 떠나야 한다.

‘지난 여름은 꽤나 길었다. 그리고 딸과 함께 보낸 시간이 무척 많았다. 아마도 우리 부녀가 마지막으로 같이 보낸 여름이 될 것이다. 내 머리는 흡사 해바라기처럼 어느새 딸아이를 따라가곤 한다.’(9월 2일) 딸을 향해 이런 말을 남긴다. ‘남자의 외모와 재능은 반비례하며 남자의 열정과 재산은 반비례한다. 네가 어느 한 면을 더 중요하게 볼 수는 있을 테지만 욕심을 내선 안된다. 얻는 것과 잃는 것이 분명 있게 마련이거든.’

일기는 10월 3일에 끝난다. ‘나는 일기가 아름다움을 유지하도록 노력했다. 병색에 물들지 않도록 했고 사망의 기운이 스며들지 않도록 하고 싶었다. 아름다운 오후의 티타임인 셈이다. 다만 우리가 앉아 있던 카페가 공교롭게도 저승과 이승의 길목이었을 뿐이다. 차를 다 마시고 이야기가 끝나면 그대는 가고, 나는 남아 묻히면 그만이다.’

20년전 만난 대학시절 동창이자 남편을 떠나보낸 그의 부인은 후기에 이렇게 적었다. ‘그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생명이 한걸음 한걸음 종점을 향해 걸어가는 것을 보는 일뿐’이었다고, 그리고 ‘남편이 남은 생명의 마지막 감상을 딸에게 줄 선물삼아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고 말하는 순간 그동안의 막막함이 비로소 믿음과 용기로 변했다’고.

류오우칭, 그는 해냈다. 그의 말처럼 이 책은 ‘죽음의 신’에게서 빼앗아온 전리품이다.

김혜영 이욱연 옮김. 원제 生命的留言-死亡日記. 2000년

<송평인기자>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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