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정홍철/항공인력 양성 정부가 나서라

  • 입력 2001년 9월 2일 18시 32분


설마 하던 항공안전 2등급 판정의 철퇴가 미국연방 항공청(FAA)으로부터 내려졌다. 한미간의 우호 관계를 봐서라도, 국내 민간 항공기의 대부분이 미국 보잉사 제작인 것을 봐서라도 20여개 저개발국가의 안전 수준인 2등급 하향 판정이야 면하지 않겠느냐는 자위적인 예측이 여지없이 빗나갔다.

그렇지만 안전불감증에 빠진 나라의 항공기가 자기 나라에만 떨어진다면 몰라도 안전을 제일로 치는 남의 나라 땅에 떨어져 생명과 재산에 엄청난 피해를 준다면 선린외교가 무슨 소용이며 국가간 경제적 이득의 다소가 무슨 소용이겠는가.

애초에 미국 FAA의 항공안전에 대한 점검은 향후 이런 저런 항목을 잘 하겠다는 것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고 8개 항목에 걸쳐 실적으로 평가하는 것이기 때문에 2등급으로의 하향 조정은 불가피할 것으로 필자는 예측한 바 있다. 점검을 앞두고 2개월여 동안 급조해낸 기술 인력의 보충, 기구의 확장, 항공법 개정 약속 등은 모두 허사가 됐다.

1997년 미국령 괌에서의 대한항공 여객기 추락사고, 연이은 포항공항 사고 및 중국 상하이공항에서의 화물기 사고 후 여당 주최 ‘항공안전관리 개선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필자는 국내 항공 사고의 원인과 항공안전관리 체계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사고 예방 강화를 위해 항공안전기구를 설치, 운영해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당시 항공안전 전문가들이 제시한 의견 중에는 정부가 경청해 정책에 반영할 만한 것들이 많았는데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제도 개선이나 실천적 운영이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작년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의 점검 때라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면 이 지경까지 추락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범정부 차원에서 문제점을 꼼꼼히 챙긴다면 항공안전 1등급 복귀는 어려운 일이 아닌데 실질적인 조치는 없고 불난 집(건설교통부) 사람들만 분주한 모습을 보자니 측은하기까지 하다.

우선 챙길 것은 건교부 항공 당국의 모양새다. 항공운송 종합 7위를 자랑하는 나라이면서도 건교부 항공 당국은 수십년 전의 초가삼간이다. 미국 항공청 기구와 비교할 때 세부 조직이 너무 엉성하다. 하루빨리 항공청으로 기구가 개편돼 국제 표준에 걸맞은 조직을 만들고 조직 체계가 정비돼야 책임 소재가 분명해지고 항공 안전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변화된 틀 안에서 실무적인 분야별 기술 인력들을 재훈련해 선진국 기술 인력에 맞먹는 기술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셋째, 정부가 최고의 권위를 갖고 항공업체들이 국제 표준에 적합하게 안전을 확보하고 있는지 과학적으로 감독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 스스로 실력 있는 인력을 양성해 확보해야 한다. 더 이상 업체에 기술을 의존해서는 안 된다.

이런 과제들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유관 부처들이 건교부 항공 당국의 일을 정확하게 이해한 뒤 도와줄 일을 분명하게 챙겨 범정부적 종합 대책을 함께 수립해야 한다. 겉으로는 여론을 의식해 각종 대책을 내놓지만 실질적인 내실을 기하지 못한다면 항공안전 1등급 복귀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정홍철(한국항공대 교수·항공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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