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추칼럼]히딩크 궁뎅이

  • 입력 2001년 8월 28일 10시 00분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히딩크. 휴가 길게 쓰고 한국 땅 오래 비우니 죄요, 남들 다 뽑으라는 고종수를 뽑지 않아서 죄요, 베스트 11 빨리 결정하지 않고 이놈 저놈 불러 들이는 것도 죄요, 선수들에게 우리말로 지시를 하지 못해서 죄요, 조강지처 냅두고 여자친구 데리고 다녀서 죄요, 쓰리백 포백 왔다 갔다 해서 죄요, 주변 전문가들의 의견을 따르지 않아서 죄요, 기자들에게 튕기는 것도 죄… 죄, 죄, 죄…

최근 각 언론과 팬들이 히딩크에게 쏟아낸 성토의 수위는 대단한 것이었다. 이런저런 의견들을 다 종합해 보면, 히딩크 이 아자씨는 도무지 한국 축구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인간이다. 더 맡겨 둬 봐야 별로 희망이 보이지도 않고 자세도 불성실하다. 믿을 수 없는 인간일 뿐만 아니라 이미 검증 받았다고 인정했던 그의 능력도 그리 별난 것이 아니다. 더구나 ‘한국적 특징’ 또는 ‘한국 축구의 특수성’을 전혀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알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 앞으로도 뻔하다. 그가 앞서 지적한 모든 단점을, 설사 그런 단점들 중 단 하나라도 고치고 만인이 원하는 순둥이 성실 충성파 한국인이 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그렇다. 히딩크는 아마도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앞으로도 대표팀을 꾸려 나갈 것이다. 물론 점차 베스트 11도 가려지고 팀 전술도 다듬어 지기는 하겠지만, 앞으로도 언론과 다정다감하게 지내면서 한국 축구의 일선 지도자들을 고문으로 모시는 상냥한 일은 없을 것이다. 쓰리백이든 포백이든 자기가 쓰고 싶은 것을 쓸 것이고, 변함 없이 힘과 체력과 스피드를 강조할 것이다. 또한 뽑기 싫은 놈은 끝까지 꼬장부리며 ‘No!’라고 말 할 것이다.

각종 신문에서는 히딩크 감독이 지금 이대로 나가면 한국의 16강 진출은 어둡기만 하다는 진단을 내 놓았다. 그것도 전문가들의 의견까지 첨부하면서 말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분명하지 않은가? 이누무시키 지금 절라게 문제가 많으며 앞으로도 개선의 여지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한 마디로… 포기해야 할 것 같다. 아쉽지만… 만약 위에 언급한 그런 이유들, 그런 히딩크의 문제점이 절대적인 것이라면 돈 수십억을 쏟아 부었지만 지금 당장 포기하는 것이 현명하다. 그나마 그게 남는 장사요, 한국의 16강 진출 가능성을 그나마 높일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과연… 히딩크를 짤라 버릴 수 있는가? 그럴만한 확실한 근거, 그리고 히딩크를 짤라 버리고 더 좋은 대안을 찾을 자신과 배짱이 있는가? 미안하지만, 지금 여기 저기서 히딩크를 향해 터뜨리고 있는 불만과 성토의 소리는 “히딩크 궁뎅이는 빠알~개” 하면서 놀리는 꼬라지로 보인다. 그 아자씨 궁뎅이가 빨간지 어떤지도 모르지만, 궁뎅이가 빨개서 한국 축구 대표팀을 지도할 자격이 없으니 잘라 버리자고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히딩크를 쪼아 대는 사람들 보다도, 히딩크의 팀이 프랑스와 체코에게 0대5로 왕창 깨지는 것보다도, 여전히 우리의 꿈이 손에 잡히지 않는 것 보다도… 모두가 히딩크 궁뎅이만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이 더 답답하고 절망적이기만 하다. 모두가 함께 한국 축구의 위기를 공감하고 돈을 수십억 쏟아 부으면서 택한 히딩크! 그렇게 그를 데려오고는 정작 우리는 그의 궁뎅이만 쳐다보고 있는 셈이다.

히딩크의 머리를 쥐어 짜내도 모자랄 마당에 왜 우리는 모두 히딩크 궁뎅이만 바라보고 있어야 하는가? 사실 여기에 한국 축구의 문제, 우리 국가대표팀의 문제, 협회의 문제, 언론의 문제, 팬의 문제가 어우러져 있다고 볼 수 있다. 그의 머리와 가슴속에 있는 것을 모두 끄집어 낼 수 없기 때문에 모두가 히딩크의 궁뎅이만 쳐다보는 것보다 더 큰 쪽팔림이 어디 있겠는가? 그를 불러올 때는 그만한 이유가 분명히 있었음에도 정작 그 본연의 목적은 상실한 채 오히려 그의 행보 하나하나에 울고 웃는 우리의 모습이 너무나도 답답할 뿐이다.

히딩크를 불러오기 전, 우리는 분명히 우리 축구가 처한 문제점에 합의를 했다. 단기적으로는 2002년 월드컵에서 기대 만큼의, 그리고 최소한의 체면 치레는 할 수 있을 만큼의 성적을 올리기 위해 히딩크가 필요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분명히 1년 전의 우리에게는 더 큰 명제가 있었다. 바로 한국 축구의 미래, 그리고 점차 잃어가고 있는 우리 축구에 대한 무한한 자부심을 다시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앞으로 치고 나가는 일본이 아니꼽기도 했고 뒤에서 밀고 올라오는 중국이 같잖아 보이기도 했다. 4년마다 반복되는 초라한 모습을 더 이상 견디기 힘들기도 했다. 그랬기 때문에 우리는 꼴사납게 비틀어진 우리 축구의 뿌리를 한 번 제대로 심어보고 싶었으며, 그 중 하나의 방법으로 히딩크를 택했다. 분명히… 당시 우리의 모습은 히딩크의 궁뎅이 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있었다는 것을 모두가 기억할 것이다.

히딩크의 궁뎅이가 빨간지 파란지를 따지기 전에, 과연 우리에게 빨간 궁뎅이 히딩크의 가슴과 머리에 담긴 것들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묻고 싶다. 한국적 문화와 국민 정서에 앞서서, 백만불짜리 궁뎅이를 쳐다보는 우리의 모습이 너무 볼품 없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가 말이다. 그의 역량을 100%, 또는 우리가 툭하면 입에 담는 120% 발휘하게 만들기 보다는 히딩크가 우리의 정서는 무시한 채 100% 역량을 발휘하지 않는다고 말할 만큼 우리가 지금 여유로운가 말이다.

절박하다. 지금은 모두가 잊었는지 모르지만 최소한 1년 전의 우리는 매우 절박했다. 나름대로 2승 1패라는 올림픽 출전 사상 최고의 성적을 올리고도 위기 의식을 모두가 함께 느낄 만큼 우리는 절박했었다. 몇 번의 실수를 범하고, 또한 몇 번의 상투적이고 건성건성 반성을 한 다음에 비로소 우리는 스스로 절박함을 느꼈다. 한국 축구 역사상 그것처럼 값지고 소중한 변화도 없었다.

절박함… 그런데 지금 그런 절박한 심정으로 히딩크 궁뎅이에 똥침이나 쏘아 올리는 우리의 모습은 초라하기만 하다. 히딩크가 K-리그 보는 일에 소홀하다고, 뿌리가 얕은 우리 축구의 현실은 모르면서 이 선수 저 선수 테스트만 한다고, 선수 개개인에게 확실한 포지션을 심어주고 밀도 있는 훈련을 시키지 않는다고 넋두리 할만큼 우리가 한가한지 묻고 싶다. 소위 말하는 총력전이 지금 우리가 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히딩크는 사실 그러한 총력전의 일부에 불과하다. 결코 히딩크가 우리의 총력전을 대신해서 싸울 수 없으며 총력전을 펼친다는 것은 히딩크의 역할을 전체 프로젝트의 극히 일부로 만들만큼 다른 곳에서 우리가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가 우리 팀을 맡은 지 8개월이 지났지만 그동안 히딩크와 선수들이 함께 훈련할 수 있었던 시간은 그리 길지가 않았다. 또한 대표팀의 핵심 선수들이 모두 해외 리그에서 뛰는 상황을 고려할 때 앞으로도 이러한 현상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결국,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뛰어난 감독이라도 스스로 팀을 조련하고 전술을 반복적으로 주입시키기 보다는 선수 개개인에 대한 충분한 테스트와 다양한 전술적 실험을 택할 수 밖에 없다. 문제는 한국 축구의 뿌리가 유럽처럼 튼실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의 목표가 더 높은 곳에 있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는 영 마음이 놓이지 않는 실정에 처해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현재 우리가 바라보는 히딩크의 성과가 불만족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현명하고 충분한 노력을 기울일 준비가 되어 있다면 결코 그 모든 결과를 히딩크 개인의 역량에 맡기는 도박을 하지는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예전처럼 장기간의 합숙을 할 수 없고 여러 선수들이 해외 곳곳에 흩어져 있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 선수들의 대부분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선수들이 아니기 때문에 히딩크로서는 우리 선수 개개인을 파악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반면 그는 감독이기 때문에 선수 개개인을 파악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장차 월드컵에서 만날 우리의 상대를 물리치기 위한 전략을 만들기도 해야 한다. 그러한 전략이라는 것이 우리 자신에 대한 이해와 상대 팀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시작된다는 사실 또한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가 히딩크를 택한 주된 이유이자 히딩크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미션은 지금까지 그가 다른 팀을 지도하면서 보여줬던 (그리고 우리가 가지고 싶었던) ‘히딩크 축구’를 우리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며, 가급적이면 그의 축구가 우리 대표팀과 한국축구 곳곳에 묻어나도록 하는 것이다.

당연히 히딩크가 그의 축구를 100% 우리에게 토해내는 것에 모든 역량이 집중될 수 있는 체계가 갖추어져야 한다. 또한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공격적이어야 한다. 히딩크를 공격하고 쪼아 대라는 말이 아니다. 히딩크가 자신의 능력을 100% 또는 그 이상 발휘하지 않으면 안될 만큼 제반 지원과 노력이 그를 압도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히딩크가 K-리그를 관전하면서 눈에 들어오는 선수를 발굴하는 것을 목 빼고 기다리기 보다는 우리가 먼저 싹수 있는 선수들에 대한 리포트를 확보할 수 있어야 하며, 또한 그것을 눈물이 찔끔 나도록 정리하고 분석한 후 히딩크에게 제공할 수 있다면 히딩크가 더욱 빨리 그의 축구를 우리에게 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처럼 히딩크가 뭘 하는지 꼭지 곤두세우고 감시하기에 앞서서 히딩크가 해야 할 일거리와 동기를 지속적으로 부여할 수도 있다. 룰루랄라 거릴 수 없는 상황, 히딩크 스스로 120%를 발휘할 수 밖에 없는 철저하고 치밀한 상황을 이끌어갈 수 있을 것이다.

“아이 씨… K-리그도 속속들이 보지 못한 주제에 유럽에서만 기웃거리면 모하냐?” 라고 말하는 것과 “K-리그 선수들에 대한 발굴과 점검은 당신이 보는 바와 같이 우리가 하고 있소이다. 부족한 부분이나 별도로 관전이 필요하다면 말을 하시오. 일단 당신은 유럽으로 날아가 거기서 뛰고 있는 우리 선수들과 2002년에 만날 유럽 팀들에 대한 대비책을 찾아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라고 말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전자가 바로 우리가 지금 하는 것처럼 히딩크 똥꼬만 쳐다보는 것이요, 후자는 우리가 히딩크를 부려먹을 줄 아는 것이다. 그에게 시시콜콜 딴지를 건다거나 물고 늘어지는 것은 그를 부려먹는 것이 아니라 궁뎅이 빨갛다고 놀려먹은 것일 뿐이다. 비판의 카타르시스 외에는 어느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않는 일이다.

과연 우리는 그렇게 하고 있는가? 최소한 그렇게 할 준비와 자세는 갖추고 있는가? 히딩크에게 이백만 달러를 지급하는 것 이상으로 그러한 총력전을 위해 이천만 달러를 투자하고 있는가? 히딩크의 똥고집에 대항할 수 있을 만큼 그 동안 대표팀이 보여준 변화와 성과에 대해 객관적이고 정량적인 지표를 스스로 마련해 가고 있는가? 그에게 맹목적으로 대업을 책임 지우기에 앞서 우리 스스로는 진정 넘을 수 없는 한계에 부딪칠 만큼 모든 것을 동원하였는가? 언제부턴가 한 발 앞서가는 일본에 대해 부러움 반 시샘 반의 눈길을 보내는 것은 트루시에가 히딩크보다 잘났기 때문이 아니다. 일본이 펼친 총력전의 결과가 트루시에의 성과를 압도하고도 남을 만큼 그들의 꾸준한 투자와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새 잊은 것일까?

정녕 내년 월드컵에서 우리가 원하는 성적을 거두고자 한다면 먼저 히딩크의 궁뎅이에서 눈을 떼기 바란다. 그리고, 히딩크가 우리 대표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10분의 1로 끌어 내릴 만큼 우리의 노력과 투자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 대표팀 코칭 스텝 외에 필요한 정보 인력을 대폭 확보해야 한다. 대표선수 및 상비군 소속 선수 개개인을 매일 같이 점검 및 관리할 수 있는 인력과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엷은 우리의 선수 층이지만 행여 나올지 모르는 진주를 찾기 위해 전국 각지의 고등학교 이상 팀들은 꾸준히 주목해야 한다. 해외 진출 선수들은 최대한 그곳에서 기량 향상을 꾀할 수 있도록 한시적이나마 지원 체계를 가동해야 하며 꾸준히 점검하고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국내외의 동원 가능한 모든 축구 전문가의 진단과 의견을 빠짐 없이 수집/정리/분석하겠다는 당찬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신문에 실리는 칼럼이나 TV 토론이 아닌, 체계화 되고 권위를 가지는 전문가적 진단을 확보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말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히딩크처럼 후한 대접과 빠방한 지원을 받지 않은 것은 분명하지만, 한국 축구 자체에 대한 지원은 히딩크에 대한 지원만큼 빠방하지는 못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체코에게 개박살 나고 유럽 팀만 만나면 꼬랑지가 후들거리는 이유, 그리고 10개월 뒤의 한국 축구가 여전히 불확실하게만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 히딩크의 빨간 궁뎅이가 아니라 궁뎅이만 쳐다보고 있는 우리에게 있지는 않는가 반성해 봄이 어떨까? 협회, 언론, 팬 모두가 말이다.

자료제공: 후추닷컴

http://www.hoochoo.co.kr/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