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傍 若 無 人(방약무인)

  • 입력 2001년 8월 19일 19시 02분


傍 若 無 人(방약무인)

傍-곁 방 若-같을 약 刺-찌를 자 劍-칼 검 糞-똥 분 賢-어질 현

傍若無人은 旁若無人으로도 쓴다. 옆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을 뜻한다. 심야에 高聲放歌(고성방가)한다거나 쓰레기를 함부로 버린다든지, 또 마구 끼어들기를 하는 것도 傍若無人과 다름없는 행위다.

司馬遷(사마천)의 史記(사기)에 보면 刺客列傳(자객열전)이 있다. 刺客은 주인이나 은혜를 입은 사람을 위해 殺人을 일삼는 자를 말한다. 곧 請負(청부) 殺人業者(살인업자)인 셈인데 司馬遷이 그들을 높이 평가하는 것은 義理(의리)를 위해 목숨도 草芥(초개)같이 버리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刺客에 戰國時代의 荊軻(형가)가 있다. 조국 衛(위)나라에서 뜻을 펴지 못하고 떠돌이가 되어 천하를 방랑하게 되었다. 燕(연)나라에서는 이름 모를 개백정, 筑(축·거문고의 일종)의 명수 高漸離(고점리)와 한 패가 되어 어울렸다. 이들은 날마다 술을 마시고는 燕나라의 시장 바닥에서 놀았다.

興이 오른 高漸離가 신나게 筑을 뜯으면 荊軻는 노래를 불러댔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가 하면 痛哭(통곡)하기도 했다. 행동거지가 남을 전혀 의식하지 않았으므로 司馬遷은 그들의 행위를 ‘傍若無人’이라고 표현했다.

이밖에도 傍若無人을 한 사람은 많다. 중국의 晉나라 초는 亂世였다. 선비들은 草野(초야)에 숨어 나오지 않았고 識者들은 時局(시국)을 한탄하며 洛陽(낙양)성 밖 대나무 밭에서 술과 詩로 나날을 보냈다. 그들은 人倫(인륜)과 禮義(예의)를 糞土(분토)같이 여겼고 하나 같이 술고래였다. 모두 7명이었다고 해서 竹林七賢(죽림칠현)이라고 부른다.

阮籍(완적)은 竹林七賢의 좌장 격이었다. 武帝(무제) 司馬炎(사마염)이 누차 관직을 제의했지만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술만 마셨다. 또 그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는데 武帝는 太子 때부터 請婚해 왔다. 그러나 평소부터 司馬氏의 暴政에 불만이 많았던지라 매일 술만 마셨다. 한번 마시면 두 달 동안이나 마셨으므로 도무지 이야기를 꺼낼 기회가 없었다. 마침내 그는 청혼을 포기했다.

그는 또한 호탕하기로도 유명했으며 좋고 싫은 것을 분명하게 구별했다. 그래서 마음에 드는 친구라도 찾아오면 며칠간이나 술을 퍼 마시지만 미운 사람에게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술잔을 든 채 노려보기가 일쑤였다. 눈이 온통 흰자위만 보이게 흘겨보았으므로 ‘白眼視’(백안시)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다. 그의 눈에는 지위고 뭐고 아무 것도 없었다. 傍若無人이었던 것이다.

鄭錫元(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sw47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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