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김복희/월드컵 개막식 뭘 보여줄 것인가

  • 입력 2001년 8월 19일 18시 22분


세계인의 뇌리에 가장 깊숙이 박힌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아마도 ‘한국전쟁’일 것이다. 88서울올림픽은 이러한 한국의 부정적 이미지를 불식시키는 귀중한 계기가 됐다. 정부와 문화인이 모두 한마음이 되어 고급 국가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당시 한국은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죄다 보여주었다. 대북의 행진, 차전놀이, 태권도, 가면 카오스, 고풀이, 부채춤 그리고 굴렁쇠까지. 경기장이라는 거대한 공간과 순간적인 정적 속에서 여섯 살 소년이 굴렁쇠를 굴리는 연출은 예상을 뒤엎고 세계인을 놀라게 한 한국의 창작세계였다. 그러나 당시 참여했던 문화인들이나 그 문화를 해외에 알리려고 노력했던 사람들 대부분은 노력한 만큼 ‘값싼 한국 이미지’ 불식에 성공하지 못했다고 믿고 있다. 그건 아마도 경험과 준비와 기획능력의 부족에 기인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제 그와 같은 시행착오 없이 문화 한국의 이미지를 세계에 새기고, 나아가 한국의 상품까지 고급으로 보이게 할 수 있는 더 없이 좋은 기회가 다시 왔다. 내년에 한국과 일본에서 함께 열릴 월드컵 행사가 그것이다.

이렇듯 황금같은 귀한 찬스를 맞았는데도 ‘보여줄 것’을 찾기 위해 중지를 모으는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월드컵 조직위원회가 각계에 자문위원회를 조직했다는 소식은 들었다. 그러나 그들이 ‘보여줄 그 무엇’을 위해 아이디어를 냈다는 얘기는 아직 없다. 88올림픽 개막식 안무에 참가했던 예술인의 한 사람으로서 그때처럼 엄청난 돈을 쓰고도 과연 원하는 과실을 딸 수 있을까 하는 우려를 하게 된다.

언제부턴가 한국에서 벌어지는 큰 이벤트에는 북이 등장하고, 사물놀이가 늘 같은 패턴으로 피곤할 정도로 반복되어 왔다. 외국인들이 좋아한다는 맹신과 기획자나 입안자들의 고민하지 않는 자세가 틀에 박힌 작품을 단골 메뉴로 만들었다.

월드컵 개폐막식 등 대형 이벤트가 주는 감동은 무대공연과는 또 다른 예술 창작세계이다. 황영조 선수가 올림픽 마라톤의 월계관을 썼던 바르셀로나 몬주익 경기장의 밤하늘에 불꽃 화살이 날아가 올림픽 성화를 점등하던 장면이나 프랑스 월드컵 개막식에서 볼 수 있었던 특출한 창작세계는 얼마나 독창적인가!

일본과 경쟁하게 될 월드컵 개폐막식 문화행사는 전세계인에게 양국의 문화 수준의 차이를 보여주는 문화 전쟁터가 될 것이다. 폐막식보다는 개막식 문화행사에 이목이 집중된다는 점에서 한국은 좋은 기회를 잡은 셈이다. 그러나 88서울올림픽 때부터 늘 등장해온 대북이나 새천년 광화문 축제에서 전세계에 중계되었던 사물놀이 등을 그대로 월드컵에서 재탕해서 보여준다면 한국의 문화뿐만 아니라 경제마저도 ‘재탕’이나 하급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우리의 것은 좋은 것이고, 세계적인 것이다. 그러나 그 속에 안주하면 안 된다. 밖을 향해 열려 있는 범세계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가치관이 담긴 한국적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중지를 모아야 할 것이다.

김복희(한양대 체육대학장·무용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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