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은행 공적자금이 샌다

  • 입력 2001년 8월 15일 18시 38분


수십조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된 은행들은 부실을 부른 낡은 관행을 떨어내고 뼈를 깎는 자구노력을 통해 국민부담을 줄여야 할 책무가 있다. 정부는 공적자금을 조성할 때마다 구조조정을 조건으로 금융기관에 최소한의 자금 지원을 하겠다고 거듭 밝혔다. 그러나 최근 국회에 보고된 자료를 보면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는 여전하고 이를 단속해야 할 정부의 감독 기능도 느슨하기만 하다.

금융감독원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임직원에게 무이자나 다름없는 저금리로 대출해준 금액이 은행마다 수백억원씩에 이른다. 시중은행들이 연 1%의 이율로 대출해준 주택구입자금 대출 규모는 3800억원을 웃돈다. 막대한 공적자금이 투입된 은행일수록 특혜대출 규모가 커 자구 노력에 더 소홀한 행태를 보여준다. 이익을 많이 내는 일부 은행이 경영혁신 차원에서 노사합의로 이러한 쌈짓돈 대출을 폐지한 것과 대조를 이룬다.

공적자금으로 부실을 떨어내고 겨우 회생한 은행들이 국민 부담으로 직원들의 복리후생을 후하게 챙겨주고 있는 셈이다. 쌈짓돈 대출은 은행들이 고객과 주주에게 돌아가야 할 이익을 가로채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특혜대출이 현직 챙기기라면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기업에 대한 낙하산 인사는 퇴직자 챙기기다. 주 채권 은행들이 워크아웃 기업에 퇴직 임원을 감사 또는 사외이사로 내려보내는 실태는 정치권의 공기업 낙하산 인사와 다를 바 없다. 국회 제출 자료에 따르면 산업은행은 워크아웃이 진행 중이거나 워크아웃을 받다 졸업한 15개 기업에 총재 부총재 등을 지낸 인사 19명을 감사 또는 사외이사로 배치했다.

견제와 감시 역할을 해야 할 사외이사나 감사 자리가 채권은행의 낙하산 인사로 채워지면 은행과 워크아웃 기업의 유착을 가져오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이 같은 도덕적 해이는 워크아웃 기업에 대한 관리 감독 소홀로 이어져 은행의 부실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

주 채권 은행의 퇴직 임원들이 워크아웃 기업의 고문으로 들어가 별로 하는 일 없이 임원급 월급과 사무실 차량 비서를 제공받기도 한다. 부실기업을 회생시키려면 최고의 경영 전문가가 필요한데 은행에서 내려온 낙하산 인사들은 능력검증 절차나 제대로 거쳤는지 의문이다.

워크아웃 기업에는 경비 절감을 위해 임원을 대폭 감원하라고 요구하면서 은행들이 제 식구 챙기기에 급급한 것은 이율배반의 도덕적 해이다. 금융감독원이 이러한 문제를 뻔히 파악하면서도 눈감아 주고 있는 것 역시 직무 태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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