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필립 골럽/세계화 뒤엔 불평등 있다

  • 입력 2001년 8월 15일 18시 26분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경제의 장점만이 강조되는 오늘날에도 제3세계 경제학자인 아마르티아 센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의 목소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98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센 교수는 경제이론에 윤리적인 관점이 도입돼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최근 미국 LA타임스지에 기고한 글에서 국제 정상회의의 단골 손님이 돼버린 대규모 군중시위는 ‘세계가 안고 있는 박탈감과 불평등’ 때문이라고 썼다. 따라서 그는 정책적 제도적 변화를 통해 국가 사이는 물론 개별 국가 내에서 부의 공평한 분배를 이루는 것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그의 말대로 점점 늘어나는 전 세계 단위의 자유시장은 사람들을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주장하는 ‘기회와 번영을 공유하는 황금시대’로 안내하지 않는다. 대신 국가와 국가 사이는 물론 개별 국가 내에서의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하나 하나 따져보자. 세계화 옹호론자들은 세계화가 선진국과 후진국의 거리를 좁히면서 이른바 ‘남(빈국)’과 ‘북(부국)’의 간극을 좁힌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많은 통계들은 세계경제에서 후진국 경제가 차지하는 비중이 19세기에 비해 줄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많은 후진국이 옛날보다 나아졌을 수는 있지만 선진국이 발전하는 속도보다는 훨씬 느리게 나아진 것이다.

1860년에는 이른바 제3세계의 제조업 생산량이 전 세계 제조업 생산량의 16.8%를 차지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단지 9%에 불과하다. 유엔개발계획(UNDP)에 따르면 1960년대 최빈국 수준 국민들의 평균 수입은 부유한 나라 국민 평균 수입의 30분의 1이었으나 오늘날에는 74분의 1로 급감했다.

이런 통계 수치들을 살펴볼 때 동아시아 신흥 산업국들을 예외로 하고는 세계화가 부국과 빈국의 소득 차를 좁히기는커녕 넓히고 있다.

세계화는 개별 국가 내에서의 불평등도 키운다. 서구 세계의 지속적인 성장과 늘어난 부의 총량에도 불구하고 자유주의 경제정책이 도입된 1980년대 초 이후 개별 국가 내의 소득 불평등은 심화돼 왔다. 보다 구체적인 연구들에 따르면 1980, 90년대에 보통 근로자 가정의 수입은 감소한 반면 고소득자들의 수입은 기록적으로 증가했다.

미국을 예로 들면 1950년부터 1978년까지는 인구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부자들의 가계 수입은 99% 증가했다. 같은 기간 가난한 인구 5분의 1의 가계 수입은 140% 증가했다. 모두 재산이 늘었지만 가난한 사람들의 재산 증가 비율이 더 높았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와서 이처럼 평등으로 향하던 추세가 바뀌었다. 70년대 미국내 소득의 5.5%를 차지했던 가난한 5분의 1의 소득이 90년대엔 3.7%로 줄었다. 부유한 5분의 1의 소득이 국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50%를 기록했다.

99년에는 미국인 가운데 1%에 속하는 부자 한 사람의 세후(稅後) 평균 소득이 극빈자 100만명의 수입에 맞먹었다. 80년대 이후 20년 만에 미국사회는 19세기 말이나 20세기 초의 불평등 사회로 되돌아간 셈이다. 유럽에서도 지난 20년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났다.

이런 불평등의 심화는 시장에만 맡겨둔다고 해서 부가 평등하게 배분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말해준다. 자연히 정부의 개입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방 세계에는 정부가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사회적 계약을 보증해야 한다는 생각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정부가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계약에 개입하는 것이 의문시되고 있다. 이 때문에 극소수만이 세계화된 시장에서 부를 수확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인도와 브라질의 농민들과 유럽이나 미국의 노동자들은 공통점을 찾기 어렵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자유시장이 자신들에게 적정한 몫을 돌려주지 않을 것이란 공통적인 우려를 안고 있다.

많은 국가의 지도자들은 이런 우려에 대해 언급하려 하지 않는다. 이들은 불평등이 불만을 키울 뿐만 아니라 결국에는 사회조직을 분열시킬 것이란 사실을 외면하는 듯하다.

또 경제적 사회적 분야에서 윤리의식이 제 몫을 찾지 못하면 반세계화 시위가 계속될 것이며 더욱 강렬해질 것이라는 점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이제 센 교수 같은 이의 목소리를 경청할 때가 됐다.

필립 골럽(프랑스 파리 8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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