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황호택/대통령 회고록

  • 입력 2001년 8월 10일 18시 48분


대통령 회고록은 세계 출판업계에서 별로 돈벌이가 되지 않는 장르로 정평이 났다. 문학작품으로서도 그렇고 역사서로서의 가치도 떨어진다. 대부분 고스트 라이터(대필작가)들이 쓰니 문학성을 인정받지 못한다. 자신의 글로 자신만이 아는 이야기를 거짓 없이 쓰는 전직 대통령은 드물다. 온갖 뉴스 미디어들이 대통령의 시시콜콜한 동정까지 세세하게 보도하는 시대에 은퇴한 대통령의 회고록에서 새로운 내용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대통령을 내조한 퍼스트 레이디들이 섬세한 감각으로 쓰는 회고록이 오히려 남편들의 회고록보다 잘 팔린 사례가 많다. 제럴드 포드와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부부의 회고록에서 이런 역전 현상이 일어났다. 1000만달러의 선인세를 주고 빌 클린턴을 잡은 출판사보다 800만달러에 힐러리 클린턴과 계약한 출판사가 돈을 더 벌 가능성이 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 설사 ‘모니카 르윈스키 섹스 스캔들’을 담더라도 스타 특별검사의 수사보고서가 인터넷을 통해 상세하게 공개한 것이어서 판매에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우리나라에는 전직 대통령들이 은퇴한 후 회고록을 남기는 문화가 없었다. 이 나라를 장기간 통치한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이 회고록을 남겼다면 그들의 고뇌가 어떻게 현대사의 방향을 틀었는지를 밝히는 데 도움이 됐을 것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재임 중 자신의 언행을 모두 기록하게 하면서 “회고록을 쓰는 한국 최초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말을 가끔 했지만 대통령에서 물러난 후 참회록을 써야 하는 상황이 돼버렸다. 한국 최초로 회고록을 남긴 대통령의 영예는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돌아갔다. 두 출판사에서 취임 전후로 나누어 모두 5권을 출간했다.

▷전직 대통령이 국정운영 경험을 기록해 살아 있는 교훈을 주는 것은 중요하다. 김대중 대통령은 직접 쓰기를 좋아한다니 은퇴하면 바로 회고록 집필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대통령의 펜’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회고록을 쓰는 클린턴 전 대통령에게 ‘국민 모두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덕목은 솔직함’이라고 충고했다. 앞으로 회고록을 쓸 한국의 전직 대통령에게 필요한 덕목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황호택논설위원>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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