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칼 세이건의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입력 2001년 8월 10일 18시 33분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칼 세이건 지음/이상헌 옮김/503쪽 1만8900원/김영사▼

과학 대중화에 평생을 바친 사람이 죽음을 앞두고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었을까. 미국의 우주계획을 선도하고 ‘코스모스’ 등 세계적 베스트셀러를 펴낸 칼 세이건은 62세의 아까운 나이에 지병으로 이승을 떠나기 직전 457쪽에 달하는 방대한 저서를 집필했다.

투병생활을 하며 그가 끈질기게 매달린 주제는 과학의 ‘그레샴 법칙’, 곧 나쁜 과학이 좋은 과학을 몰아내는 풍조였다. ‘나쁜 과학’이란 다름아닌 사이비 과학이다.

사이비 과학은 ‘X파일’과 같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즐겨 다루는 소재를 망라한다. 이를테면 텔레파시, 염력, 투시력 따위의 초능력에서부터 점성술, 비행접시, 외계인, 상온핵융합, 바이오리듬에 이르기까지 초자연적이고 신비스러운 현상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과학법칙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사이비 과학이라 불러야 하는 것이다.

세이건은 이러한 가짜 과학이 미국 사회에 횡행하는 사례를 집대성해서 철두철미하고 흥미진진하게 분석한다.

그는 사이비 과학이 득세하게 된 원인으로 과학 계몽의 실패를 꼽는다.

미국의 경우 95%가 ‘과학문맹’이라는 것이다. 겨우 5%의 인구가 과학의 원리를 이해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따라서 그가 내놓는 처방은 자나깨나 ‘과학 대중화 운동’이다.

세이건은 과학이 인류를 가난으로부터 탈출시킬 수 있고, 지구환경에 초래할 위험을 사전에 경고해주며, 우주와 생명의 기원과 본질을 밝혀 줄 뿐 아니라, 과학의 가치와 민주주의의 가치가 일치하기 때문에 반드시 일반대중이 과학에 관심을 갖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사이비 과학의 중심에는 이른바 ‘뉴 에이지’ 운동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뉴 에이지의 전도사인 프리초프 카프라가 1975년 펴낸 ‘현대 물리학과 동양사상’이 번역 출판된 것을 계기로 1980년대부터 신과학 열풍이 불었다.

양자역학과 동양의 신비주의가 우주를 설명하는 방법에서 유사성이 적지 않다는 카프라의 주장이 일부 지식인을 매료시켰음은 물론이다.

뉴 에이지 과학이 ‘신과학’으로 불림에 따라 ‘새로운 과학’ 이라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기 때문에 과학에 관한 식견이 부족한 사람들은 이것이 사이비 과학임에도 불구하고 뉴 에이지를 ‘새롭고 좋은’ 과학으로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현대과학을 무조건 비판하는 반과학적 행태가 마치 진보적 지식인의 보증수표인 것처럼 용인되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을 정도로 가짜 과학이 득세하고 있다.

세이건은 ‘사이비 과학의 화려한 속임수 앞에 과학이 무릎을 꿇으면 비판적 사고방식의 실종으로 미신과 불합리가 판치는 사회가 된다’고 경고한다.

이 책의 부제는 ‘과학, 어둠 속의 작은 촛불’ 이다. 어둠 속에서 인류에게 길을 밝히는 촛불이 꺼지면 악령들이 판치는 세상이 올 터. 악령은 다름 아닌 사이비 과학이다. 과학 대중화에 무관심한 과학자들에게 감히 일독을 권하고 싶다.

☞ 도서 상세정보 보기 & 구매하기

이인식(과학문화연구소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