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점잔만 빼는 영화는 '못봐줘'

  • 입력 2001년 8월 9일 18시 41분


1980년 맨해튼의 비콘 극장에서 ‘최악의 영화 페스티벌’이 열린 적이 있다. 여기서 상영된 작품은 ‘외계에서 온 9번째 계획’ ‘그들은 히틀러의 뇌를 보관해두었다’ ‘아주 작은 마을의 공포’ 등 엄청난 혹평을 받은 실패작들이었다.

그러나 이 영화제는 관객들에게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이 사실은 이 영화제에서 상영된 영화들이 사실은 ‘정말로 형편없는 영화들’이 아니었음을 의미했다. 정말로 형편없는 영화는 곧 ‘도저히 참고 볼 수 없는 영화’를 의미하기 때문에, 만약 이 영화제에서 정말로 형편없는 영화들만 상영되었다면 관객이 하나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에드 우드 감독의 ‘외계에서 온 9번째 계획’ 같은 영화는 터무니없다 못해 무지막지하게 느껴질 정도이기 때문에 스크린을 향해 입을 쩍 벌리고 경악을 하는 것 자체가 꽤 재미있다. ‘정말로 형편없는 영화’라는 타이틀에 어울리는 것은 이런 영화들과 달리 위대한 작품이 되고 싶어 안달을 하는 영화들이다.

정말로 형편없는 영화가 되려면 점잔을 빼면서 설교를 하는 것 같은 분위기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관람객들의 인생을 바꾸겠다는 야망을 드러내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결정적인 것은 바로 유머가 없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름 밝히기를 거부한 워너브러더스사의 한 고위 중역은 보지 말아야 하는 영화를 골라내는 나름의 규칙을 이렇게 밝혔다. “유명한 남자배우나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이 연출한 영화, 턱수염을 길렀거나, 수염을 깨끗이 깎은 로빈 윌리엄스가 출연한 영화, 존 윌리엄스가 음악을 맡은 영화, 쥘리에트 비노슈나 케빈 코스트너가 출연한 영화, 자기 영화를 자랑스러워하는 여자 감독의 영화 등의 시사회에 갔을 때는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가장 가까운 출구가 어디인지 먼저 확인해두어야 한다.”

하지만 형편없는 영화들이 모든 사람에게서 한결같이 혹평을 받는 경우는 의외로 드물다. 아니, 오히려 비평가들과 아카데미 심사위원들을 그럴듯하게 속여넘기는 경우가 더 많다.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을 받은 ‘아웃 오브 아프리카’ ‘잉글리시 페이션트’ ‘늑대와 춤을’은 아카데미 시상식처럼 지나치게 감상적이고 이상주의적이었으며 너무 길었다. 그러니 아카데미 심사위원들이 이 작품들을 마음에 들어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올해에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A.I.’로 아카데미상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매혹적이다’ ‘걸작이다’ ‘사랑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는 찬사를 받은 이 작품에 대해 일부에선 역사상 최악의 영화일지도 모른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영화감독인 로이드 카우프만은 최근 이 영화를 가리켜 ‘정서적인 포르노’라고 말한 바 있다. “어떤 종류의 비평에도 끄떡없는 작품을 만들 의도로 짜여진, 영혼이 없는 조립식 블록버스터”라는 것이다.

이처럼 의견이 엇갈리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어떤 것이 형편없는 영화인가에 대한 의견은 사실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논란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정말 형편없는 영화도 분명히 존재한다. ‘노브로:마케팅의 문화와 문화의 마케팅’이라는 책의 저자인 존 시브룩은 “분에 넘치게 점잔을 빼는 영화야말로 최악”이라고 말했다.

(http://www.nytimes.com/2001/08/05/movies/05LIDZ.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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