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그는 위대한 패자였다 '명장 한니발 이야기'

  • 입력 2001년 8월 3일 18시 22분


'명장 한니발 이야기'/파트리크 지라르 지음 전미연 옮김/전3권 각권 380쪽 내외 8000원 한길사

1857년 어느 봄날, 플로베르는 한 여인에게 편지를 쓴다. “저는 기원전 3세기에 카르타고에서 벌어진 일들을 소설로 쓰려고 합니다. 이 현대라는 시간에서 좀 벗어날 필요를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는 구멍이 숭숭 뚫린 역사를 상상력으로 복원해 가며, “우리가 모르고 있는 어떤 문명을 부활시키려는” 계획을 포기하지 않았고, 1862년 4월 20일 일요일 아침, 그 자신이 ‘자주빛 그 어떤 것’이라고 부른 소설, ‘살람보’를 완성한다.

150여년의 시간이 흐른 후, 아프리카 튀니지의 역사에 심취해 있던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CNRS)의 한 연구원이, 플로베르의 상상력이 비켜간 흔적들을 뒤져 카르타고의 이야기를 부활시켰다.

일찍이 카르타고는 지중해 주변에 상관(商館)을 세우며 세력을 키웠던 해상 부국(富國)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나라를 지키는 일을 ‘돈을 주고 산 용병들에게 손을 내미는 방법을 택했다’. 로마는 달랐다. 시민들이 국방을 맡았다.

‘조국을 위협하는 자들로부터 조국을 보호한다’는 신념 하나로 멀고 험한 전투에 오른 카르타고의 장군들도 정치가의 음모는 내버려두지 않았다. 정책기구였던 104인 심의회의 방해와 모략은 용병들의 식량과 수당과 함께 카르타고의 미래를 가로막는 가장 치명적인 내부의 적이었다.

카르타고는 패자(敗者)였다. 넓은 땅과 수많은 섬과 바다를 지배하며 인류가 만들어낸 어떤 강대한 제국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었던 카르타고. 모든 무기와 모든 군선을 공출했으면서도 3년 동안이나 로마군의 공격을 견뎌냈던 저력과 기개. 그러나 건국한 지 700년, 오랜 세월 동안 번영을 누린 도시가 한순간에 잿더미로 변했다.

로마는 승자로 남았고, 역사는 카르타고를 시간의 저편으로 보냈다. 한때의 영화가 너무나 찬란했기 때문일까. 패자의 역사가 이토록 가슴 아린 것은?

이 책 ‘명장 한니발 이야기’ 3부작은 포에니 전쟁으로 알려진 이 고대의 사건, 지중해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사력을 다해 싸웠던 카르타고와 로마의 한판 승부, 전사상 가장 걸출한 두 명장을 남겼던 역사의 현장으로 우리를 안내하는 통쾌한 역사소설이다.

카르타고의 막강한 귀족 가문이었고 한니발이 태어난 가문이었던 바르카 가문의 내력을 중심으로, 3차에 걸친 포에니 전쟁이 각권별로 세밀하면서 일목요연하게 그려진다. 또 전사(戰史)를 다룬 것인 만큼 절대절명의 순간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적나라한 모습도 읽는 재미를 더한다.

정복과 몰락의 역사를 서사시적 유연함으로 풀어낸 이 책은, 역사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인 저자의 이력에서 엿볼 수 있듯이, 소설 구성의 긴장감과 문장의 맛깔스러움에는 다소 아쉬운 감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이 ‘판가름난 역사’ 보다 그 생생한 과정의 로망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데 책은 부족함이 없다. 이 책을 읽고 났을 때 결코 멸망이라는 말이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한 제국의 사라짐에 대해서 ‘왜?’ 라는 의문부호는 달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등장하는 말처럼, 혹 누가 알겠는가? 카르타고가 새로 태어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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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봉 만(성균관대 강사·불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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