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오세정/과학-교육만은 힘 합쳐라

  • 입력 2001년 8월 2일 18시 31분


우리 사회의 공동체 의식과 규범이 급격히 붕괴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원래부터 정쟁으로 날을 보내던 여당과 야당은 말할 것도 없고, 정부와 언론, 신문과 방송, 경영자와 노동자 사이의 반목도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수준까지 도달한 듯하다.

심지어 지식인들까지 편이 갈려 논리적인 토론보다 감정적인 언사로 상대방을 비방하는 반(反) 이성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한결같이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위해 죽을 각오로 싸우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일반 국민이 보기에는 정말로 이들이 국민의 장래를 위해서 싸우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소리치는 것인지 미심쩍기만 하다.

하기는 이들이 죽을 각오로 싸우는 것 같기는 하다. 마치 요즘 유행하는 사극에서 왕의 비빈(妃嬪)들이 온갖 수단을 동원해가며 사생결단의 암투를 벌이듯이 말이다. 하지만 과거 이러한 궁중 암투의 결말이 어떻게 나든, 일반 백성들의 생활에는 커다란 차이를 주지 못했던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그보다 백성들에게 더 중요했던 것은 얼마나 식량이 생산되었는지, 혹은 이웃 강대국의 침입은 없었나하는 사실이었다. 이러한 역사의 흐름에 비추어 보면,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회 지도층의 요란한 싸움보다 우리에게 더욱 중요한 일은 사회의 생산력을 높이고 외국과의 경쟁력을 갖추는 일이다.

지식기반사회에서 사회의 생산력은 무엇인가. 바로 구성원들의 지적 능력이고 기업의 첨단 기술력이다. 이 힘을 기르기 위해서는 창의적인 교육을 실시하고 국가의 과학기술을 발전시켜야 한다.

그러기에 아무리 사회 전체가 싸움판이 되더라도, 이 두 가지 국가의 기본적인 사명은 소홀히 하거나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 하면 누가 정권을 잡든지 나라가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지식기반사회의 기본인 지적 능력과 첨단기술력이 없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물론 매일 정쟁으로 지새우는데 어찌 이것이 가능할 것이냐고 물을 수 있다. 하지만 꼭 비관적으로만 볼 것은 아니다.

일반 국민에게 널리 알려져 있진 않지만, 지난 수년간 한국의 정보화 기반과 국가연구개발 체제는 많이 발전하였다. 초고속 인터넷망의 보급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성장하였고, 국가의 연구개발 투자는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곧 선진국 수준인 정부 예산의 5%를 달성할 전망이다. 과학기술 투자의 효율성 제고를 위한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체제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러한 기반 구축에 힘입어 과학기술 수준도 괄목할 만한 발전을 하였고 좋은 성과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사실 이러한 발전은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서 대통령의 지속적인 관심과 일관된 정책 추진에 힘입은 바 크다. 그 동안 야당은 이 분야에서 비견할 만한 비전과 정책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정부 여당의 발목을 잡지도 않았다. 이처럼 국가의 발전을 위하여 필요한 정책을 사심 없이 추진하면, 정쟁과 관계없이 여야의 합의 하에 순조로이 진행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비해 교육정책은 정치적인 판단으로 뒤틀린 경우로 보인다. 평등주의와 수월성 제고라는 두 잣대 사이에서 정책이 우왕좌왕했으며, 이에 따라 여러 교육정책이 여야 및 진보와 보수 세력 사이의 논쟁 대상이 되면서 일관성 있는 추진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부존자원이 부족한 우리에게 교육은 민족의 사활이 걸린 문제다. 정치적 이해관계나 편향된 이념에 구속되지 않은 합리적인 교육정책을 도출해 범(汎)정파적으로 일관성 있게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최근 제기되고 있는 정권을 초월한 교육정책 추진기구의 구성도 고려해 봄직하다.

항상 자신의 이해관계가 걸린 일은 실제보다 커 보이기 마련이다. 그러기에 현재 상황에서는 정말로 ‘죽기를 각오하고’ 싸워야 한다고 느낄지 모른다. 그러나 누가 이기느냐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은, 미래를 대비하여 민족의 역량을 기르는 일이다. 여기에는 교육과 과학기술의 발전이 핵심이다. 곳간이 텅 비고 기둥이 무너진 후에 그 집을 차지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오 세 정(서울대 교수·물리학·본보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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