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맏며느리 의미 재평가 '장남과 그의 아내'

  • 입력 2001년 7월 27일 18시 39분


◆'장남과 그의 아내'/김현주 지음/312쪽 1만2000원 새물결

가족관계란 고단한 세상살이에 색과 맛을 입혀주는 친밀성의 원천임에 틀림없지만, 그와 동시에 우리 모두가 벗어날 수 없는 영원한 고민거리임을 부인할 수 있을까.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의 사소한 (때로는 거대한) 어긋남과 충돌은 오늘도 전화통을 붙들고 친구에게 털어놓는 끝없는 수다에서, 혹은 토크 쇼나 드라마에서 재탕 삼탕으로 되풀이된다.

하지만 결론 아닌 결론은 늘 비슷하다. ‘세상만사 다 그런 거야’, ‘나보다 더 기막힌 사연도 많더라’, ‘참고 살아야지, 별다른 수가 있나.’…

그러나 가족말고는 달리 기댈만한 ‘사회적 안전망’이 없는 한국 사회에서 가족간의 갈등은 단지 사소한 문제가 아니라 평생의 복지를 좌우하는 중대사가 아닌가? 그렇다면 가족관계에 대한 일상적 대화들은 단지 하소연이나 인생타령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사회적 제도와 개인의 관계를 드러내는 의미론적 자원들로 다시 읽힐 수 있다.

이 책은 이처럼 일상에 대한 성찰을 ‘업그레이드’한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저자는 한국 가족의 변화나 갈등 양상이 장남 가족에 집중적으로 나타날 것이라 보고 장남부부 33쌍을 직접 인터뷰했다. 인터뷰에서는 우리에게 익숙한 사연들, 가령 부모가 반대하는 결혼, 혼수에 대한 트집, 고부간의 갈등, 분가(分家)와 합가(合家)의 구구절절한 이야기들이 그대로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저자는 이처럼 ‘흔한’ 인생사연들에 이른바 ‘구성주의(constructionism)’라는 사회학적 방법론, 그리고 인류학자 마르셀 모스의 ‘증여’ 개념을 적절하게 적용함으로써 결혼과 가족을 관통하고 있는 사회적 관계를 새롭게 해석해 내기에 이른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맏며느리’의 위치에 대한 재평가다. 저자에 따르면 부모 부양이라는 가족의 수직적 세대관계를 재생산하는 장남 부부의 역할은 실질적으로 장남이 아니라 장남의 아내인 맏며느리에 의해 수행된다. 전통적인 가족규범은 장남과 결혼한 여성에게 맏며느리로서의 책무를 강요하지만, 오늘날 한국 여성들은 자신의 위치를 며느리(즉 수직적인 세대 관계에서의 역할)보다는, 장남의 ‘아내’(세대 내의 수평적인 역할)로서 인식하고 있고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제목 또한 ‘장남과 맏며느리’가 아니라 ‘장남과 그의 아내’가 됐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또한 교육수준이나 취업률이 향상되면서 여성들이 어느 정도 확보한 경제적 자율성은 가족관계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점도 강조된다.

기존의 한국 가족연구의 성과와 연결된 논의가 없는 점이 아쉽기는 하지만, 주관적 정체성 속에서 재현되는 가족관계를 읽어내는 새로운 시각이 가족 연구자들의 주목을 끌만 하다. 일반 독자들 또한 자신의 일상을 되돌아보면서 가족에 대한 ‘성찰 지수’를 높일 수 있는 의미 있는 독서 경험이 되리라 생각한다.

황정미(서울대 강사·사회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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