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두브의 집과 길에 대하여

  • 입력 2001년 5월 25일 18시 52분


두브의 집과 길에 대하여

이브 본느프와 시집

111쪽 5000원 민음사

이브 본느프와를 유명하게 만들어준 첫 시집(1953년 출간)이 충남대 불문과 이건수 교수의 번역으로 나왔다. 우리에겐 생소한 본느프와는 1923년 프랑스 투르에서 태어났다. 대학 시절에는 수학과 논리학을 전공했지만, 초현실주의자들의 작업을 보고 충격을 받아 시인의 길로 접어든다.

그러나 키에르케고르와 헤겔을 깊이 읽고, 체스토프의 영향을 받은 그는 곧 초현실주의자들과 결별한다. 초현실주의의 악마적이고 몽환적인 세계는 명민한 그에게 지나치게 무책임한 것으로 보였던 것이다. 그는 초현실주의자들과 결별하고 독자적인 길을 걷기 시작한다. 이 시집은 그의 독자적인 행보가 드러나있는 기념비적인 시집이다.

본느프와는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 명단에 오를만큼, 문학적 역량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는 보들레르의 직계후손으로 여겨진다. 명민성과 문학적 색채에 있어서 이 대선배를 고스란히 이어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문적 미술비평가라는 점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본느프와는 15세기 플로렌스 벽화의 전문가이며, 최근에는 자코메티에 관한 매우 중요한 저작을 써내기도 했다. 그는 문학비평가로서도 역량을 인정받고 있다. 그가 쓴 ‘랭보론’은 랭보론들 중에서 가장 탁월한 저작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러나 본느프와는 삶의 현장으로부터 눈을 돌리지 않는다. 그가 늘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현존이다. 그가 그토록 이미지에 매혹되면서도 이미지로부터 거리를 두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미지는 지나치게 자기충족적이어서 자칫 ‘나쁜 현존’의 기만성을 숨기기 때문이다. 그의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 취임 강연의 제목은 ‘이미지와 현존’이었다.

‘두브의…’는 한 편 한 편 읽는 시가 아니다. 시집 전체의 구성을 참고해야 한다. 왜냐하면, 본느프와에게 시는 세계의 이러저러한 단면들의 미메시스(모방)도 아니며, 감정의 토로는 더더욱 아니며, 일종의 시적인 형식으로 써내는 철학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시인이 위대함은 명민성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 현대문학사의 한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텔켈 그룹과 본느프와는 분명한 변별성을 보이는데, 그 역시 텔켈 그룹처럼 지적이지만, 시를 지적인 작업에 제한시키지 않는다. 그는 언제까지나 운명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의 시는 운명의 언어적 해결방식이라는 본래의 소명에 충실하다. 그런 의미에서 그에게 시는 언제나 ‘행위’이다.

김 정 란(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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