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전진우/‘술의 노래’

  • 입력 2001년 5월 10일 18시 33분


‘술은 입으로 들어오고/사랑은 눈으로 들어가나니/나이들어 늙어 죽기 전에/알게 될 진실의 전부/나는 입에 술잔을 쳐들어/그대 바라보며 한숨짓는다’

예이츠(W.B.Yeats 1865∼1939)의 시 ‘술의 노래’다. 누구는 그럴 것이다. 술이 입으로 들어오는 거야 당연하고 사랑이 눈으로 들어간다는 것도 첫눈에 반한다고도 하니 그럴 듯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늙어 죽기 전에 알게 될 진실의 전부라니, 아무리 시인의 감성이라지만 너무 지나치지 않은가. 또 누구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따지고 보면 인생의 진실이란 게 뭐 그리 대단한 것이던가. 술은 입으로 들어오고, 사랑은 눈으로 들어가는 것 이상 뭘 더 알아야 한단 말인가.

▷한 편의 시를 두고 옳으니 그르니를 따지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리라. 시란 읽고 나름대로 느끼면 되는 것이니까. 따라서 예이츠가 1923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아일랜드 출신의 위대한 시인이며 극작가이자 민족주의 정치가였다는 사실을 굳이 시 한 편에 결부시킬 필요는 없을 터이다. 그러나 세상과의 불화(不和)로 상처받기 일쑤였던 열정적 시인 예이츠는 결국 온갖 인간 욕망의 덧없음, 인간 존재의 유한(有限)함에 한숨지은 건 아니었을까.

▷고(故) 천상병(千祥炳) 시인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고 노래했다. 속세의 영화나 헛된 명예와는 담을 쌓고 살았던 시인의 눈에는 욕(慾)으로 가득한 세상도 소풍나온 아름다운 곳이니, 그 달관의 경지는 실로 ‘예이츠의 한숨’에 비할 바가 아닐 듯싶다.

▷인간의 욕망이란 생(生)의 원동력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그러하듯 욕망도 지나치면 당사자를 파멸시키는 것은 물론 세상을 병들게 한다. ‘내기 골프 해프닝’의 당사자들인 구(舊)정치인들은 그만한 일에 ‘여론이 뭐 이러냐’ 할지도 모르겠다. 하나 민심을 분노케 한 것은 단지 ‘내기 골프’가 아닌 천박한 ‘권력 놀음’이 아니겠는가. 권력의 덧없음과 유한함 앞에 실로 한숨지을 일이다.

<전진우논설위원>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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