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부장판사 법률신문 기고 전문

  • 입력 2001년 5월 3일 16시 09분


1. 군 복무시절 사단 참모회의에 참석하였는데, 사단장의 농담 아닌 농담이 기억에 새롭다. 그분은 비신앙인이었는데도, 참모회의 중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우리 사단 장병들이 건강하게 아무런 사고 없이 잘 복무하기 위해서 제일 중요한 것은 군종 목사님께서 정성껏 기도하시는 것이고, 다음으로 군법무관이 군법교육과 재판을 제대로 하는 것입니다"

어느 사회의 정신적 기초를 좌우하는 것은 종교와 법률이다. 그런데 IMF를 맞아 종교인들과 법률가들이 책임을 통감하고 사회의 기본을 재정립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그 결과 국민들은 종교인들과 법률가들에게 IMF이전보다 더 큰 불신과 비난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종교인들은 자신을 불태우는 희생을 통해서 세속을 초월한 사랑으로 국민들의 정신을 새롭게 하고, 새 힘을 북돋워 줄 책임이 있다.

그런데 종교인들이 IMF이전보다 더욱 세속적으로 흐르고 있는 것 같다. 교회, 성당, 사찰을 더욱 크고 편리하게 짓는데 여전히 열정적이고, 권세가들과 어울리기를 즐기며 세속에 대한 영향력을 은근히 과시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을 바라보면서 국민들은 점점 더 종교에 대해서 냉소적이 되고 있다.

2. 법률가의 역할은 사회의 썩은 곳을 샅샅이 찾아내서 추상과 같은 심판을 내려 국민들로 하여금 정도(正道)를 가도록 만드는 데 있다.

법원이나 검찰의 업무는 모두 국민의 위임에 따른 것이다. 그러므로, 재판권과 공소권의 행사가 국민의 뜻에 어긋난다면, 그것은 국민에 대한 배임행위이다.

물론 일부 오도된 여론에 부화뇌동해서도 안되겠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판,검사들은 국민의 보편적인 의지 내지 일반의사(一般意思)를 늘 염두에 두고 일해야 한다. 국민들은 기대가능성이 더 큰 사회적 강자들에 대해 보다 엄정한 법의 심판을 바라고 있다.

그러나, 그 기대가 번번히 허물어지면서 국민들은 법률가들에게 점점 더 등을 돌리고 있다. 판결이 국민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판사들이 주권자인 국민을 덜 의식하기 때문일 것이다.

대법원장을 정점으로 판사들을 한 줄로 줄을 세우고 모든 인사권을 대법원장에게 집중하고 있는 현재의 관료사법 시스템하에서 판사들은 일을 함에 있어서 국민들을 덜 의식하게 되지 않나 생각한다.

그리고, 모든 법관들이 퇴직 후 변호사로 나서는 우리 나라 법관들의 운명은 지극히 비정상적이다. 언젠가 변호사를 할 것이라는 잠재의식이 어느 법관의 마음 한 가운데 남아 있는 한, 그는 진정한 법관이라고 할 수 없다고 한다면 지나친 말일까?

3. 판사나 검사는 유한하지만, 판결이나 공소장은 영원하다. 그러나, 죽은 정승보다 산 개가 낫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 나라 사람들의 의식에는 지나치게 현세기복(現世祈福)적인 면이 있다.

이러한 경향 내지 분위기는 청사(靑史)에 길이 남는 판,검사가 되기 보다는 목전(目前)의 승진(昇進)에 더 관심을 기울이게 만들 수 있다.

이웃 나라 일본에서는 사법개혁논의가 한참이다. 법관인사제도에 관한 한 투명성과 객관성의 원칙을 확립하는 것이 긴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까지 일본 사법부의 인사가 밀행적이고 자의적이었다는 반성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일본법관들이 거의 정년까지 근무하고, 퇴직 후에 변호사를 하지 않는 점에서는 그래도 우리 보다는 나은 편이다.

법관인사의 투명성과 객관성의 원칙은 삼권분립을 확립하기 위한 보편적인 원칙이라는 점에서 우리 사법부도 하루빨리 이 원칙을 확립해야 할 것이다.

문흥수/서울지법 부장판사(법률신문에서 전문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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