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문화도 월드컵시대]걸을때도 표지판따라 행동

  • 입력 2001년 4월 24일 18시 42분


“솔직히 저는 여기서 그럭저럭 지내요. 하지만 아내와 자식들이 무슨 죄가 있어요. 큰아들이 올해 고등학교 3학년이라 중요한 때인데 아버지로서 뒷바라지 못하는 게 제일 마음이 아파요.”

18일 교통사범 전담교도소인 경기 수원시 우만동 수원교도소(소장 李仁焞)에서 만난 재소자 조모씨(45)는 이렇게 말했다. 조씨는 99년 봄 회사 직원들과 회의를 마친 뒤 술을 마시고 자신보다 더 취한 직원들을 집에 데려다 주려고 자신의 승용차로 음주운전을 하다가 마주 오던 다른 승용차를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27세 된 상대차량 여성운전자가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종합보험에도 들지 않았고 집에 돈도 없어 합의도 못했다. 그 결과 징역 3년형이 확정돼 이 곳에 수감됐다.

조씨와 함께 수인(囚人)들을 통솔하는 ‘반장’ 역할을 맡고 있는 강모씨(43)는 이 곳 생활이 벌써 4년째. 강씨는 97년 가을 음주상태에서 보행자를 치어 숨지게 하고 도주했다가 5년형을 선고받았다. 강씨는 수원교도소가 교통사고 등 과실범 전담교도소로 탈바꿈한 98년 7월 ‘첫 손님’으로 입소했다.

도심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는 이 곳의 재소자 1000여명 중 95%는 조씨나 강씨와 같은 교통사범. 교통사범 전담교도소답게 이 곳의 시설과 운영은 대부분 ‘교통안전’에 집중돼 있다.

이는 당초 과실범 전담 교도소로 바꾼 목적이 재소자들이 사회에 나가더라도 다시는 교통사고를 내지 않는 안전운전자로 만든다는 데 있기 때문이다.

우선 교도소 곳곳에는 각종 도로교통 안전표지판이 설치돼 있다. 특히 재소자 사동 복도는 잘 정비된 도로를 연상시킨다. 복도에는 문 앞마다 횡단보도가 그려져 있고 중앙선과 각종 도로교통 안전표지판이 설치돼 있다.

재소자들은 복도를 걸을 때는 좌측통행을 해야 하고 ‘일단 멈춤’이라는 표지판을 보면 실제로 일단 멈춰야 한다. 재소자들이 표지판의 뜻을 익히도록 표지판마다 친절한 설명이 붙어 있다.

주경섭(朱京燮·46)보안과장은 “일반적으로 재소자들은 주의력과 집중력이 약하다”며 “수용되는 동안 반복적으로 신호를 지키는 연습을 하도록 설치한 것”이라고 말했다.

재소자 사동 앞뜰에는 흐드러진 개나리꽃 앞에 앞부분이 참혹하게 찌그러진 스쿠프 승용차 한 대가 ‘예술작품’처럼 전시돼 있다. 교통사고의 참혹함을 일깨우기 위해서다. 지난해 운전자 옆자리에 탄 사람이 머리를 다쳐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던 차량이다. 지난해 4월 한 폐차장이 이 차를 기증해 교육용 ‘사고차량탑’으로 전시됐다.

재소자들은 입소한 뒤 2주일 동안, 퇴소하기 4주일 동안은 하루종일 교통안전교육을 받는다. 교육 효과를 높이기 위해 교도소측은 다양한 외부 강사진을 갖추고 있다. 교통사고 사례와 안전운전법은 기본이고 경기 용인시의 ‘드라이빙스쿨’에 가서 운전실습도 하고 ‘교통사고 장애인협회’ 등에서 나온 교통사고 피해자들의 이야기도 듣는다. 또 인성교육이나 친절교육 등을 통해 침착하고 여유 있게 운전하는 태도도 배운다. 18일 오전에는 외부 강사인 박기종씨가 193명을 상대로 ‘건강하게 사는 법’에 대해 강의했다.

이 같은 다양한 교육 때문에 수원교도소는 지난해 동아일보사와 손해보험협회가 주최한 ‘교통안전대상’에서 교육부문 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주과장은 “무엇보다도 나의 생명이 중요한 것처럼 다른 사람의 생명도 중요하다는 인성교육이 교통사고 재발을 막는 데 필수적인 요인”이라고 말했다.

수원교도소는 강도나 강간범 등 흉악범이 아니라 실수로 사고를 낸 교통사범이 대부분인 만큼 교도소 내에서도 비교적 자유로운 생활이 가능하다.

우선 재소기간이나 행형 성적에 따라 차이는 나지만 입소 2주 후부터 퇴소할 때까지 외부와의 전화통화가 가능하다. 무엇보다도 모든 재소자는 쇠창살이 없는 면회실에서 탁자를 사이에 두고 면회 온 가족과 친구 등을 만나 손을 잡고 얘기를 할 수 있다.

18일 교도소 면회실에서는 한 살 된 아이와 함께 교도소 생활을 하는 김모씨가 면회 온 남편을 만나고 있었다. 김씨는 “미안하다. 옷가지나 뭐 좀 많이 가져왔어야 하는데…”라는 남편의 손을 잡고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모든 재소자는 외부에서 하는 통근작업을 통해 생활비도 번다. 또 일부 모범수는 외부에 있는 운전자들을 대상으로 ‘공개 강의’를 하기도 한다. 조씨와 강씨가 그런 사람이다.

강씨는 이렇게 말했다. “강의 나가면 절대 음주운전을 하지 말라고 간곡히 애원해요. 술 마시면 아예 키를 버리고 가라고 하죠. 기자님도 꼭 그렇게 하세요. 가족을 사랑한다면요.”

<수원〓신석호기자>kyl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