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부하에게 돈받는 게 '관행'?

  • 입력 2001년 4월 23일 18시 41분


자신의 운전병에게 3700만원이라는 거액을 도난당한 문일섭(文日燮) 전 국방차관의 ‘해명’은 납득하기 어렵다.

문씨는 현직에 있던 한달 전 10만원권 수표 70장, 현금 800만원과 1만7000달러를 집에서 도난당했는데, 달러화는 “국방부 획득실장 재직 이래로 6, 7회 해외출장을 다녀오면서 쓰고 남은 돈과 3월26일로 예정됐던 터키 출장을 앞두고 친지 및 군 간부 등으로부터 받은 돈”이라는 것이다. 그는 또 “외국 출장 때 서로가 돈을 거둬 주는 게 국방부의 관행”이라고 말했다.

공직자의 해외출장 때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여비에 보태 쓰라고 얼마간의 돈을 주는 것은 그럴 수도 있다고 치자. 그러나 상사가 부하직원에게서 ‘촌지’를 받는 것도 관행이란 말인가.

더욱이 한번 해외여행에 수천 달러씩이나 받았다면 그것은 이미 촌지가 아니라 뇌물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공직자들에게 무슨 여윳돈이 있어 상사에게 돈을 건넸는지도 의문이다.

한마디로 이런 비정상적인 금품 수수는 더 큰 부정과 비리로 발전할 소지가 다분하다. 이런 게 관행이라면 당장 그 뿌리를 뽑아야 한다. 이런 잘못된 관행이 계속된다면 국민의 불신은 말할 것도 없고 공직사회의 개혁은 백년하청이다.

더구나 이번 사건의 경우 한 부처의 집안살림을 도맡아 챙겨야 하는 차관이라는 사람이 부하들의 모범이 되지는 못할망정 구태와 악습에 연연했다는 점에서 지탄을 받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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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씨는 또 수표 중 일부에 대해서는 “판공비 중 쓰다 남은 돈”이라고 했지만, 이 또한 사리에 맞지 않는 해명이다. 판공비는 말 그대로 직무 수행과 관련해서 사용하는 돈이다. 그런 돈이 도대체 왜 집안에 남아 있는가. 고위 공직자의 판공비가 그렇게 쓰고 남을 만큼 넉넉하다면 대폭 삭감하는 게 마땅하다.

이 밖에도 이번 문씨 사건에서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몇 가지 있다. 도난 액수와 보관장소 등에서 문씨의 해명이 오락가락한다는 점도 그렇고, 돈이 종이상자에 넣어져 베란다에 놓여 있었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그런 거액을 베란다에 보관하는 사람은 없다. 또 범인이 훔친 수표의 일부만 사용하고 대부분을 불에 태워 버렸다는 경찰의 정황 설명도 통념에 어긋난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절도사건으로 넘길 일이 아닌 것 같다. 많은 의문점이 철저하게 밝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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