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비료 줘야 대화하나

  • 입력 2001년 4월 19일 18시 41분


정부가 올해도 북한에 비료 20여만t을 지원하기로 한 그 자체에 대해서는 구태여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며칠 전 세계식량계획(WFP)은 북한의 작년 곡물수확량이 필요량인 480만t의 3분의 2에 불과해 올해도 극심한 식량난을 겪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국제기구의 막대한 지원에도 불구하고 그처럼 기아현상이 여전한 상태라면 남측의 인도적인 도움은 불가피하다고 하겠다. 또 비료는 정부가 99년의 15만5000t에 이어 작년에도 30만t을 지원한 전례가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북측에서 공식 요청을 하기도 전에 우리측이 먼저 비료 제공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닫혀 있는 남북대화의 문을 열기 위해 비료를 주기로 한 것이다. 이처럼 비료지원 사업을 이산가족상봉이나 남북대화와 연계시키려는 발상은 남이든 북이든 잘못됐다.

이산가족상봉이나 남북대화는 비료지원문제와는 별개로 꾸준히 추진되어야 할 과업이다. 북한이 비료지원을 받는 ‘대가’로 이산가족 상봉사업이나 남북대화에 나선다면 그것이 얼마나 진실된 것이며 오래 지속될 수 있겠는가. 임동원(林東源) 통일부장관은 “전에도 (비료지원에) 이산가족상봉을 조건으로 했기 때문에 서신교환 생사확인을 서로 하고 있다”고 했으나 그 동안 몇차례 이산가족상봉은 다분히 전시성 행사로 끝난 감이 없지 않다. 그리고 남북관계는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

북한의 자세변화 없이는 남측의 대북지원이 한계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 우리사회에서는 당장 “우리만 인도주의냐”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등 일방적으로 퍼주기만 하는 대북정책에 대한 비난의 소리가 높다. 북측의 자세 변화를 우선적으로 촉구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음을 정부는 명심해야 한다.

북한에 대한 비료지원은 결국 남측 사람들의 혈세에서 충당된다. 아무리 인도적 지원이라 해도 계획없이 무작정 지원해 줄 수는 없는 일이다.

북한은 무엇보다 경제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비료를 지원하겠다는 남측의 성의를 생각해야 한다. “남측이 비료를 지원해주니까 잠시라도 대화에 응한다”는 속 좁은 계산을 버리고 정말 인도주의 정신에 입각해 교착상태에 빠진 적십자회담 등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차제에 우리는 북한이 자신들의 취약한 농업구조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작업에 착수하길 촉구한다. 북한의 현재 농업구조로는 식량 부족이 매년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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