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고재경/미래위한 영어 투자 막을 일인가

  • 입력 2001년 4월 12일 19시 15분


《10일자 오피니언면(A6면) '여론마당'에 게재된 조진수 한양대 교수의 '묻지마 영어투자 나라 망친다'는 제목의 기고에 대해 고재경 배화여대 교수가 반론을 제기해왔다. 토론의 활성화를 위해 고교수의 글을 싣는다.》

조진수 교수의 글 내용에 수긍하는 면이 없지 않지만 '묻지마 영어투자'의 이상열풍에 대한 심각한 폐해 가능성에 대해 두 가지 점에서 의견을 달리 한다.

첫째, 조교수는 모든 국민이 영어 열병에 걸려 망국의 근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영어 공부에 과도하게 투자한다고 나라가 망할까. 우리는 학교와 직장 생활을 통해 무슨 일을 하든지 투자한 만큼 과실을 거둬야 그 일이 성공한 것이라고 들어왔다. 오히려 열정과 각오를 가지고 영어에 대한 투자와 학습을 권장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영어 학습의 폭발적 열풍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다음의 예를 들어 보겠다. 국내에서는 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도 외국인과 영어로 온전히 의사를 소통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더구나 외국대학원으로 유학간 사람이 전공 분야에 대해 논리적으로 영어 에세이를 쓰기가 힘들다는 사실을 나의 유학생활을 통해 뼈저리게 느꼈다. 외국에서 열리는 학술 발표회나 국제회의, 세미나, 그리고 외국 바이어와 상담할 때 상대방의 말을 잘못 이해해 동문서답하는 해프닝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런 사정을 잘 아는 학생이나 학자, 기업인, 학부모들이 어렸을 때부터 영어 공부에 매달려 실력 향상을 꾀하려는 것은 자신이나 자녀들의 미래를 적극적으로 준비하기 위한 의도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어린이부터 직장인에 이르기까지 영어 공부 열풍에 빠져 나라를 망칠 수 있다는 주장은 침소봉대식 발상이라고 있다. 아울러 그런 단순논리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지나친 논리의 비약이라고 생각된다.

둘째, 조교수는 정부가 직접 대다수 국민의 맹목적인 영어 열풍을 잠재우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부가 과연 모든 사람의 사적 학습권에 관여하면서 과도한 영어 학습 열병을 치유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국민의 다양한 선택권과 학습 욕구를 국가가 획일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발상은 일종의 파시즘이 아닐까.

조교수가 지적했듯이 현대사회는 모든 국가가 치열한 경제전쟁을 치러야 한다. 세계 무대에서 영어 능력을 배양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렇게 급변하는 시대적 조류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할 때 중요한 점이 정부가 영어 학습 열풍을 진화하는 것일까.

시대 조류에 맞추려면 오히려 국민이 자유시간을 적극 활용하고 투자해 영어학습을 극대화해야 한다. 나아가 정부가 각자의 영어에 관한 소질과 잠재력을 개발해 코스모폴리탄적 시민의식 수준을 갖추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고 학습환경을 조성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국내에서 영어를 사용할 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에 과도한 영어 투자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조교수의 지적도 설득력이 없다. 당장은 영어로 말할 일이 없어도 내일을 준비하는 것이 교육이다.

고재경(배화여대 교수·영문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