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猶豫不決(유예불결)

  • 입력 2001년 4월 12일 18시 37분


한자 단어를 보면 동물이나 식물의 특징을 따서 만든 것들이 꽤 있다. 葛藤(갈등) 狼狽(낭패) 狡猾(교활) 등 많은 데 이런 예는 차차 소개하기로 한다.

猶豫를 보자. ‘결행을 하지 않고 잠시 미루어 둔다’는 뜻으로 요즘은 ‘執行猶豫’(집행유예·정상을 참작해 일정기간 형의 집행을 보류시켜 선고효력을 잃게 하는 제도) 등처럼 주로 법률적인 용어로 많이 사용되고 있는데 알고 보면 이것도 동물의 특성을 따서 만든 말의 전형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먼저 猶부터 보자. 이 놈은 담이 약하고 疑心(의심)이 많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바스락거리는 소리만 나도 그만 나무 위로 달아나 가지 속에 숨어버린다. 한참이 지나 괜찮다 싶으면 나무에서 내려오는 데 다시 조그만 기척이라도 있으면 똑같은 행동을 되풀이한다. 그러다 보니 그 짓만 반복하다가 하루 해를 다 보내고 만다. 사실 그 동물은 ‘원숭이’다.

그러면 豫는 무엇인가. 象자가 들어 있는 것으로 보아 코끼리와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코끼리는 코끼리인데 지금의 코끼리보다 훨씬 더 큰 코끼리를 말한다. 아마도 코끼리의 조상인 매머드가 아닐까 여겨진다.

지금 코끼리는 세계의 일부 지방에서만 서식하고 있다. 그러나 옛날에는 중국에도 코끼리가 많이 살았다고 한다. 그것은 중국 신화에 코끼리가 등장하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실제로 현재 중국의 河南省을 옛날에는 ‘豫’라고 불렀는 데 코끼리가 많아서 그렇게 불렸다.

이 놈도 그 큰 덩치와는 어울리지 않게 겁과 의심이 많은 동물이다. 그래서 개울을 건널 때는 행여 해치는 자가 없나, 얼음이 깨지지나 않나 하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므로 좀처럼 쉽게 행동에 옮기지 못한다.

어쨋든 猶나 豫는 의심이 많아 머뭇거리면서 결단을 못내리는 동물들이다. 따라서 猶豫는 법률용어로서는 반가운 말이겠지만 현실에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여기서 나온 말이 ‘猶豫不決’이다. 머뭇거리면서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바야흐로 스피드 시대, 신속한 판단과 果敢(과감)한 대책이 필요하다. 猶豫처럼 우물쭈물했다가는 경쟁에서 낙오하기 쉽다.

요즘 일본 교과서 문제에 대처하는 정부의 微溫的(미온적)인 태도에 불만이 高潮(고조)되고 있다. 시민들은 물론 국회에서조차 의원들의 불만 섞인 질의가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일본 편이냐’는 비난까지 나오고 있다. 정부의 猶豫不決에 항의하는 목소리다.

鄭錫元(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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