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개헌론 너무 속보인다

  • 입력 2001년 4월 6일 18시 36분


정치권의 개헌논의가 점입가경이다. 이어달리기에서 바통 터치라도 하듯 이 사람 저 사람이 번갈아 가며 개헌론을 내놓아 어느새 정치권 최대의 화두가 돼 버렸다. 권력구조의 변화를 중심으로 한 개헌은 정계개편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어 이미 정치권의 새판짜기가 시작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결론부터 말해 우리는 최근 일부 정치인들이 쏟아내는 개헌 주장은 그 의도가 순수하지 않은 것으로 본다. 내년 대선을 겨냥해 자신의 입지를 최대한 넓히고 자기 중심의 판을 짜보려는 정략적 계산에서 개헌론을 내놓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인다.

3월 중순 한나라당 김덕룡(金德龍) 의원이 ‘대통령 4년 중임, 정부통령제’ 개헌론에 불을 지핀 뒤 민주당측이 꺼질세라 그 불씨를 살려나가는 것부터 미심쩍다. 경제나 민생이 어려운데 그걸 살피기보다 실현 가능성도 높지 않은 개헌에 매달리는 것이 대선에 유리하게 정치구도를 바꿔 보려는 전략이 아니냐는 것이다.

청와대가 ‘지금은 개헌론을 얘기할 때가 아니다’는 입장을 밝혔음에도 여권의 대선 후보들이 앞다퉈 각양각색의 개헌주장을 펴는 것도 이상하다. 겉으론 개헌론의 확산을 원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속으론 각자 알아서 뛰도록 방임해 어떤 형태로든 개헌이 불가피하다는 분위기를 띄워 놓자는 계산이 깔린 것은 아닌가.

물론 보다 나은 정치, 보다 나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더 좋은 제도를 도입하자는 순수한 뜻의 개헌론이라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현행 제도가 안고 있는 문제점과 개선책을 차분히 당내에서 논의해 당론으로 결정짓고 선거 때 공약으로 내세워 국민의 의사를 물으면 된다. 그러기보다 대선을 앞두고 어떻게든 판세를 바꿔야 할 필요성이 생겨 개헌 주장을 펴는 것처럼 보이니 국리민복보다 당리당략을 앞세웠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현 정권은 내각제 개헌을 공약하고 집권했으면서도 이렇다 할 해명조차 없이 이를 파기했다. 집권 전의 대국민 약속도 안 지키면서 또 새롭게 개헌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니 국민은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다. 진정한 책임정치라면 과거의 개헌 약속은 왜 못 지키게 됐는지 국민을 충분히 납득시키고 그런 바탕 위에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어야 한다.

여권이 그러기는커녕 경제 민생도 제대로 보살피지 못하면서 소모적 정쟁으로 비치는 개헌론만 중구난방식으로 확대재생산하고 있으니 국민의 걱정이 깊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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