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종석/문화예술기부 장려는 못할망정

  • 입력 2001년 4월 1일 18시 37분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폭증하고 있는 지역축제가 너무 많은 게 아니냐는 시비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내용도 비슷하고 지역의 문화전통이나 특색을 제대로 살린 축제가 적어서 보는 사람들의 문화적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지역축제의 양적 팽창이 국민의 문화수요 증대에 부응하고 지역간 문화교류의 통로를 넓히기 위한 자치단체들의 노력의 일환이란 것을 감안할 때 무조건 시비나 비판을 앞세울 수만은 없는 일이다.

자치단체들이 축제를 여는 이유는 제한된 시간에 지역의 문화적 역량을 높이려는 자치단체들 나름의 잠재적 욕구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축제에 드는 재정인데 그동안 이를 민간기부금과 정부보조금으로 충당해왔다. 선진국들의 경우 지역축제 예산을 지방과 중앙 정부의 보조금으로 충당하고 민간부문이 상대적으로 적은 점을 감안하면 우리는 지방정부의 몫을 민간부문이 충당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중앙이건 지방이건 정부가 많은 부분을 부담하기 어려운 사정을 감안하면 공공과 민간이 매칭펀드로 공동재정을 마련하는 방식은 문화협동의 좋은 패러다임으로 발전시킬만한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문화기부금을 제한하려는 행정자치부의 발상은 쉽게 납득할 수 없다. 축제 뿐만 아니라 문화예술 관련단체들에 대한 기부금이나 문예진흥기금에 대한 기업의 조건부 기부도 금지한다는 것은 문화를 국가발전의 동력으로 삼으려는 정부 시책과도 맞지 않는다.

기업은 다양한 동기에서 문화예술에 기부하고 참여도 한다. 기업 광고도 하고 기업과 문화예술 분야를 연계시켜 기업의 발전기회를 넓히는 마케팅의 계기로도 활용한다. 요즘 기업은 문화산업에 직접 진출하고 투자성 지원도 한다. 기업의 문화예술 기부행위는 투자의 전초전이라고도 볼 수 있으므로 미래지향적인 이같은 기업의 기부행위를 막아서는 안된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나눔으로써 함께 커가는 기부풍토 조성의 바람이 조심스럽게 불고 있다. 선진국일수록 기부풍토를 활성화하는 추세다. 국민의 65%가 일상적인 기부활동에 참여하는 영국에서는 토니 블레어 총리가 99년에 '더 주는 시대'를 선포하고 정부 차원에서 기업의 문화예술 기부를 독려하고 있다. 미국도 기부와 자원봉사 가 국가발전의 동인(動因)이라고 할 정도로 국민의 98%가 각종 기부에 참여하는 풍토가 조성돼 있다. 문화대국을 국가 목표로 상정하고 있는 우리가 문화발전의 종자돈이라고 할 기업의 기부풍토의 싹을 잘라서는 안될 것이다.

문화예술이란 단기간에 가시적 성과를 거두기 어려운 것이다. 또 방치하면 시들고 변질되기 일쑤이므로 정부 차원에서 돌보고 가꾸는 일이 긴요하다. 이제 문화란 강 건너 불도 아니요, 울타리 너머로 보는 구경거리도 아니다. 우리 생활속에 공존하며 때로는 관객이 무대에 올라 실연에 직접 참여하는 것이 오늘의 문화적 양태가 되고 있다. 이런 문화열기를 잠재울 수도 있는 기업의 문화지원에 대한 억지정책은 삼가는 것이 정부가 명심해야 할 덕목인 것이다.

이종석(한국문화정책개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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