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이근/오너아닌 대주주 키우자

  • 입력 2001년 3월 27일 18시 37분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세상을 떠났다. ‘박정희 시대’를 상징하는 말이 된 개발독재에서 독재가 고 박정희 대통령의 몫이었다면 개발은 정 전명예회장의 몫이었기에 그의 죽음은 한 시대의 종언이라는 의미가 있다. 그 중에서도 이른바 ‘황제경영’의 종언이라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경영감사할 동기부여 필요▼

그동안 황제경영이냐, 전문경영이냐를 놓고 상대적 효율성에 관한 논란이 많았다. 이제는 이 이분법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97년에 기아 부도사태 당시 ‘봐라, 전문경영인 체제는 현실에 맞지 않는 열등한 체제가 아니냐’라는 말을 하는 이가 많았다. 그러나 그 때 많은 재벌기업도 부도가 났으며, 이는 양쪽 모두 문제를 안고 있음을 시사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기업 지배구조’의 문제다. 즉 기아의 경우 총수의 독단을 견제하고 감시할 지배구조가 부실했다는 점에서 또 다른 황제경영이었던 것이다.

황제경영보다 소유와 경영이 분산된 구조가 좋다는 주장도 있지만 오너의 지분이 어느 정도 이상 돼야 동기부여 효과가 있다는 것은 당연하다. 슐라이퍼나 비시니 하버드대 교수는 효율적 지배구조란 투자자 입장에서 투자에 대한 수익을 제대로 회수할 수 있는 구조이고, 그 조건으로 일정 이상의 지분을 가진 대주주나 대출을 많이 해준 대부자의 존재를 들었다. 즉 분산된 소액주주들은 지분이 적어서 기업을 감시할 동기가 약하거나 남의 감시에 무임승차하려 하고, 정보수집 비용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이 대주주의 존재에 추가해서 강조한 또 하나의 조건이 소액주주 권익에 대한 보호장치다. 즉 감시할 동기가 있는 대주주와 대주주의 횡포에 대한 소액주주 보호장치가 효율적 기업 지배구조의 조건인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우리나라의 기업을 보면 소액주주 보호가 약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고 대주주도 없었다. 오너가 있는데 대주주가 없다는 것이 무슨 말이냐고 하겠지만 여기에 재벌 기업 문제를 보는 핵심이 달려 있다.

보통 기업은 대주주가 직접 경영하는 집중화된 소유구조의 ‘소유자 통제 기업’과 분산된 소유구조의 ‘경영자 통제 기업’으로 나뉜다. 전자의 장점은 전문경영인의 기회주의에서 나오는 소위 대리인 비용이 없다는 것이고, 단점은 소유자의 독단에 소액주주가 피해를 보기 쉽다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 전문경영인의 기회주의라는 비용은 부담하지만 전문경영인의 경영능력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한국 재벌은 오너가 있다는 사실에서 소유자 통제기업으로 보기 쉽지만, 사실 한국 재벌은 오너의 지분이 매우 적다는 점에서 제3의 유형인 ‘소수자 통제 기업’에 속한다. 소수자 통제 기업이란 벱척 하버드대 법대 교수가 제기한 이론으로 실제 지분은 적으면서도 피라미드형 지분구조, 교차 주식소유, 우선주 발행 등으로 실제 지분보다 훨씬 많은 통제권을 행사하는 기업을 말한다.

한국 재벌은 바로 소수자 통제 기업 유형에 속한다는 사실에서 소유자 통제 기업의 단점인 소유자의 독단과 경영자 통제 기업의 단점인 전문경영인의 대리인 비용을 모두 안고 있는 최악의 구조일 수도 있다. 물론 이 유형의 기업이 고도 성장기에는 신속한 추진력과 공격경영이라는 장점으로 나타났지만 현재의 경제환경은 이 장점과는 거리가 멀다.

▼소액주주 권한 강화해야▼

황제가 떠난 지금, 그가 남긴 기업들을 잘 키우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황제경영이든 전문경영이든 그를 감시할 수 있는 지배구조의 정착이 중요하다.

첫째, 감시자의 역할을 할 큰 대부자나 잠재적 대주주로서의 은행의 발언권을 높이는 것이 빨리 취할 수 있는 하나의 방책이다. 물론 관치가 아닌 자율적인 은행을 전제로 한다. 둘째, 필요하면 언제든지 새로운 대주주가 등장할 수 있도록 인수합병을 활성화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것이다. 셋째, 오너의 지분을 낮추라고 할 것이 아니라 올리라고 하되, 대신 소액주주의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 오너의 지분을 높게 유지하려면 오너 가족들은 지금처럼 여러 기업을 소유하지 못하고 소수의 기업만 소유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런 것들이 ‘황제’를 편안히 잠들게 하기 위해서 해야 할 일들이다.

이 근(서울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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