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아의 책 사람 세상]최소한 생존권 '집'

  • 입력 2001년 3월 16일 19시 56분


내가 ‘집’에 대해 처음 생각하게 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그전까지는 집이란 공기처럼 당연히 존재하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투정부리지는 않았지만, 방이 없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 철없던 아이의 눈을 조금이나마 틔워준 것은 선생님도, 부모님도 아니고 어떤 친구였다. 중2 때부터 친했던 그 친구는 이른바 ‘가정 환경’도, 성적도 좋지 않은 아이였다. 마침내 중3 때 집안 사정 때문에 지방으로 전학을 갔고, 이후 간신히 이어지던 연락으로 그애가 학교를 그만두고 공장에 들어갔다는 것을 알았다. 86년, 여전히 저임금 고성장 정책이 이어지던 시기였고, 그애는 미성년자였다.

고2 여름방학 때의 어느 날, ‘고 3 되기 전에 한번 놀러 와라’는 친구의 전갈에 설레며 고속버스를 탔다. 친구는 나를 반가이 맞아주었고, 자기 공장 기숙사라는 곳에 데려가 자기가 사는 곳을 보여주었다. 20평이 채 못 되어보이는 작은 아파트였다. “방 작지? 여기서 공장 언니들이랑 같이 살아.” “몇 명이나 같이 살아?” 나의 호기심 어린 질문에 그애는 쾌활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나까지 열한 명.”

그 때 내가 느낀 놀라움과 공포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내가 사회주의가 무너지는 것을 목격한 80년대 끝학번이면서도 학생운동에 그토록 공감했던 것은 그 때의 충격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F 엥겔스가 ‘영국 노동자계급의 상태’(두리)에서 묘사한 공장지대 슬럼가의 모습을 읽으며 그때의 기억을 되살렸다. 경제 컬럼니스트인 정운영이 ‘저 낮은 경제학을 위하여’(까치)에서 적은 말도 뼈 속에 들어와 박히듯이 절절했다.

“우리나라의 전 국토에서 집을 지을 수 있는 땅은 불과 1.8%에 불과한데, 그것을 국민 한 사람당 대지 면적으로 환산하면 대체로 14평밖에 되지 않는다.”

이런 좁은 나라에서 부동산 투기꾼이란 근절되어야 마땅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얼마전 집에 관련된 책 한 권을 읽었다. ‘건축가 김기석의 집 이야기’(대원사). 부제는 ‘먹고·자고·쉬고·사랑하고’이다. 저자는 집이 에너지 공급 체계이며, 사랑의 다른 이름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집은 먹고, 자고, 쉬고, 사랑하는 곳이다. 그런 집을 가지지 못한 것만도 서러운 일인데 설상가상으로 ‘전세대란’마저 벌어지고 있다. 날로 치솟는 전세값 때문에 집을 비워주어야 하지만 마땅히 갈 집이 없는 서민들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경제난과 전세대란의 이중고에 시달리는 형국이다.

집은 최소한의 생존권이다. 요즘의 ‘전세대란’에 최소한의 생존권이 희생되어서는 안된다. 인간을 인간으로 지키는 것은 사회의 책임 중 하나이다.

송경아<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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