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영화 디자인으로 보기 1

  • 입력 2001년 3월 16일 19시 06분


◇디자인을 알면 영화가 보인다

박진배 지음/192쪽 /1만5000원/ 디자인하우스

영화 제작자들은 도시와 풍습 속에서 이야기를 찾는다. 거기에는 풍속화 혹은 기록화로서의 이야기를 만족시키기 위한 장치들이 마련돼 있다. 그리고 동작의 과정을 구별짓는 카메라 앵글, 화면의 중첩, 주제의 이동 같은 광학적 구조 뒤에는 엿본 듯 기억되는 영상의 즉흥성 속에 분명 어떤 배려가 은닉돼 있다.

영화는 명백히 현대 디자인의 생성과 발달사를 담고 있다. 그래서 영화의 속에는 고대 그리스 로마 문화부터 하이테크와 미니멀리즘에 이르는 모든 사조, 순수 회화와 건축, 패션과 컴퓨터 그래픽를 망라하는 전방위적 관점이 올이 풀리듯 드러나는 것이다.

이 책은 영화의 특별한 서사 방법이 어떻게 디자인을 수용하는지를 보여준다. 영화와 디자인의 프레임을 관찰하는 동안 소리없는 디자인 요소들이 어떤 계산 위에 배치되고 기능하며 또 메시지를 전달하도록 돕는지 알게 해준다.

이윽고 ‘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의 배경이 되는 룩소르 신전은 이집트 문명에 관한 인류의 맹목적 동경을 상징하며, ‘나인 하프 위크’에서 킴 베이싱어와 함께 등장한 실루엣 조명은 미스테릭한 성적 매력을 위한 장치로 차용되고, ‘안개 속의 풍경’에 박혀 있는노란 기둥과 철도 승무원의 노란 의상은 아버지를 찾고 싶은 원망을 표현한다. 또 ‘남의 돈’에서 스쳐지나가는 트럭 위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그림은 통속적 대중문화를 풍자하고, ‘하이힐’에서 처음과 끝을 지배하는 삼원색 그래픽은 모녀 간의 갈등과 복잡한 사건을 예고한다. 이 책은 영화 속으로 심오한 비행을 하기 위해 비평이나 사상, 난해한 낱말들을 끌어들이는 다른 영화 관련 서적과는 구별된다. 영화와 디자인이라는 새로운 접근법, 컬러나 폰트의 변화로 각주를 다는 친절한 편집, 충분한 분량의 영화컷들은 마치 삼촌이 건네주는 지도처럼 친절하게 다가온다.

이 책은 시각예술인 영화를 말하기 위해 다소 전문성을 띄지만, 시공을 정복하고 싶은 디자이너들에겐 덜 ‘심오’할지도 모른다. 이 만큼의 터치와 요약만으로는 배가 고플 것이다.

그러나 디자인이 영화로부터 어떻게 즐거움을 이끌어내고, 영화 언어와 작업의 주제를 어떻게 풍요롭게 만드는지, 또 영화 속의 드라마나 다양한 합성 기교들이 어떻게 또다른 예술 방식으로 재창조되는지를 탐험하는 건 분명 즐거운 일이다.

이 충 걸(월간 ‘GQ KOREA’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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