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1968―희망의 시절, 분노의 나날

  • 입력 2001년 2월 16일 18시 50분


◇'68혁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타리크 알리·수잔 왓킨슨 지음 안찬수 강정석 옮김

374쪽 1만3000원 삼인

여기 68을 상징하는 몇 장의 사진들이 있다.

극장 앞의 샌드위치맨처럼 “나는 인간이다”라는 구호를 몸에 두르고 일렬로 행진하는 흑인 인권시위대, 젊은 학생들과 연대의 팔짱을 끼고 있는 늙스구레한 프랑스 노동자, 베트남전에 반대해 징집영장을 불태우는 히피 머리의 미국 청년, 프라하의 낯선 거리에서 스스로에게 자신의 존재이유를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는 듯한 얼굴 표정으로 턱을 괴고 있는 소련 병사, “이브는 덫에 걸렸다”라는 피켓을 들고 연좌 농성을 하는 여성 시위대, 게릴라 전사의 모습으로 예수를 그린 쿠바의 포스터….

일지 형식의 이 책에서 드러나는 1968년의 상징들은 이처럼 제 각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68년 영국 학생운동의 주역이자 이 책의 공저자인 타리크 알리는 이 다양한 상징들을 세계적 차원에서 일어난 ‘68혁명’이라는 하나의 범주로 묶는데 결코 주저하지 않는다.

지리적 거리와 사회적 조건의 차이를 넘어 1968년의 세계를 ‘68혁명’이라는 하나의 범주로 묶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의 서유럽과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등의 동유럽, 미국과 소련, 일본과 멕시코, 그리스와 파키스탄 등에서 일어난 이 다양한 시위와 소요를 ‘68혁명’으로 자리 매김하는 역사의 열쇠는 무엇인가?

저자들에 의하면, 그것은 무엇보다도 ‘정치적·사회적·성적 금기 등 모든 금기’에 대한 도전과 저항이다.

격렬한 정치적 급진주의와 히피문화가 자연스레 만나고, 자본주의에 저항했던 서유럽의 학생운동과 현실사회주의에 분노한 프라하의 시민들이 굳은 연대의 악수를 나누며, 미국 흑인들의 블랙파워 운동과 멕시코 학생들의 분노가 손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기존의 금기에 대한 도전과 저항을 함께 나눈다는 점에서였다.

물론 금기에 도전하는 방식은 가지각색이며, 그만큼 1968년의 양상도 균일하지는 않다. 성과 마약, 로큰롤로 대변되는 쾌락주의와 정치적 급진주의의 어색한 동거가 ‘68혁명’의 고르지 않은 성격을 잘 드러낸다.

‘지나간 미래’로서의 ‘68혁명’을 되살리기 위해 쾌락주의를 떼어놓으려는 저자들의 시도는 이 점에서 이해된다. 그러나 섹스 이벤트를 통해 전쟁의 승리를 상징하는 ‘V’표시를 ‘∧’표시로 뒤바꿔 놓은 히피문화, 부르주아 문화의 요새인 파리 예술대학을 민중의 작업장으로 개조하고자 했던 프랑스 급진파 학생들의 문제의식이 서로 떨어질 수 있는 것인지는 조금 의심스럽다.

포르노그라피조차도 현실에 대한 통렬한 풍자로 기능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68혁명’에서 쾌락주의를 떼어놓으려는 저자들의 시도는 정치적 엄숙주의의 잔재가 아닌지 조금은 의심스럽기도 하다.

‘68혁명’의 의미는 오히려 정치적 체계화를 거부하는 그 문화적 태도에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곧 지배 이데올로기에 식민화된 생활세계에 대한 반란이자, 개인이든 집단이든 자신의 삶 속에 내면화된 기존의 질서체계를 전복하려는 시도인 것이다.

1968년 한 여성해방 선언서가 남긴 메시지처럼, ‘68혁명’의 의미는 “혁명이 아주 집 가까운 곳에 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기존의 혁명이 지향한 추상적 이념이나 거대체제의 변혁을 넘어서, 일상의 가치체계와 삶을 뒤바꾸려한 구체성의 혁명이었던 것이다.

‘68혁명’은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이다. 그러나 일상의 혁명에 대한 문제제기가 여전히 소시민적으로 매도되는 한국의 지적 상황에서 ‘68’은 아직도 ‘미래’이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