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김시무/독립영화는 충무로의 ‘새 희망’

  • 입력 2001년 1월 31일 18시 37분


이 땅에 과연 독립영화가 존재하기는 하는 것일까? 한 평론가는 메이저 영화 제작사도 정착되지 않았는데 무슨 독립영화냐고 반문한 적이 있다. 독립이란 말 그대로 무엇으로부터 벗어나 스스로 선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우리나라에는 그 기댈 만한 무엇인가가 없다는 말이다. 이를테면 미국 할리우드의 경우 스튜디오 시스템 같은 메이저들이 있고 그 다음에 그런 체제와는 다른 맥락에서 나름대로 작품 활동을 하는 마이너들이 있어서 그들을 지칭하는 말이 생겨나게 되었는데 그것이 다름 아닌 독립영화(Independent Cinema)였던 것이다.

▼상업화-획일화 주류 관행 거부▼

경우는 좀 다르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일찍부터 독립영화의 싹이 움텄고 지금은 한국독립영화협회라는 단체를 중심으로 활발한 제작 활동이 전개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독립영화의 존재와 할리우드의 그것과는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우선 할리우드의 경우 대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 인디(독립)영화들의 존립 근거가 되었다는 것이다. 제작자의 입김에 휘둘리지 않고 마음껏 작가적 상상력을 펼 수 있었던 탓에 기존의 판에 박힌 주류 영화와는 질적으로 다른 참신하고 새로운 영화들이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최근 폐막한 선댄스영화제처럼 인디영화들이 기를 펼 수 있도록 장을 마련해준 것도 한몫을 했음은 물론이다.

우리나라의 독립영화는 자본은 둘째 치고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 당면 과제였다. 군부독재권력이 서슬 퍼렇던 시절 일군의 젊은 영화인들은 기존의 충무로에서는 엄두도 낼 수 없었던 사회 문제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고, 그것은 그야말로 일제강점기 독립군들의 그것을 방불케 하는 영화를 무기로 한 ‘독립투쟁’이었다.

광주항쟁을 최초로 다루었던 16㎜ 영화 ‘오! 꿈의 나라’는 마치 비밀결사라도 하듯 은밀하게 시사회가 이뤄졌고 노동자의 파업투쟁을 전면에서 묘사한 ‘파업전야’의 경우 상영 장소에 최루탄이 난무하고 심지어 헬기의 공세까지 당해야 했다.

군부정권이 문민정부로 바뀌고 다시 국민의 정부로 바뀐 오늘날 한국의 독립영화 제작 환경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이제 화두는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 아니라 자본으로부터의 독립, 즉 요컨대 상업논리로부터의 독립이 급선무가 되었다. 그것은 또한 의식의 차원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려는 새로운 시도와 다름없다. 우리의 의식을 옥죄는 기존의 보수적인 관념과 편견을 타파하는 것이 독립영화의 새로운 기치가 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처음에 거론한 평론가가 지적했던 한국의 영화산업적 기반도 크게 달라졌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 나름의 메이저라 할 만한 영화제작사와 유통구조가 생겨나게 되고 그에 따라 제작 규모도 엄청나게 변했다.

▼대형영화 물결속 잘 버텨▼

최근 2, 3년 동안 한국영화에 나타난 외형적 변화가 그것을 잘 말해 준다. 우선 무엇보다도 한국식 블록버스터(Blockbuster)라는 대작 위주의 제작 관행이 주류를 형성했다는 점이다. 이는 ‘쉬리’ 이후 가속화된 현상이기도 하지만 지난해에 그 절정을 이뤘다고 하겠다. 막대한 제작비를 쏟아 부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던 ‘비천무’ ‘단적비연수’ 같은 국적 불명의 무협영화들은 물론이고, 흥행적으로나 비평적으로나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던 ‘공동경비구역 JSA’ 같은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이제 한국영화의 미래처럼 여겨지게 된 것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독립영화의 존재 의미는 더욱 도드라진다고 하겠다. 상업화 대량화 획일화로 치닫기 쉬운 주류 영화관행에 딴죽을 걸고, 나아가 정체된 영화판에 신선한 피를 공급할 영화적 사명이 다시 강조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나타난 독립영화군에 낄 수 있는 작품들의 면면은 그런 희망을 갖게 한다. ‘동감’의 김정권 감독,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의 김태용 민규동 콤비감독, ‘플란다스의 개’의 봉준호 감독, 그리고 ‘죽거나 나쁘거나’의 유승완 감독 등은 고래싸움에서도 용케 등터지지 않고 살아나 영화판을 풍요롭게 한 신예들이었다. 이제 이 땅에도 본격적인 의미에서 권력과 자본의 논리로부터 자유로운 독립영화의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김시무(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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