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남찬순/럼스펠드의 언론 규칙

  • 입력 2001년 1월 31일 18시 33분


기자와 취재원의 관계에 대한 원칙이나 규범은 수도 없이 많지만 잘 지켜지지는 않는다. 보는 시각과 입장이 판이해 논란과 충돌을 일으킬 때가 허다하다. 그럴 경우 어느 쪽의 주장이 ‘옳다’거나 ‘그르다’는 판정을 내리는 일 또한 간단치 않다. ‘알 권리’ ‘공공의 이익’ ‘사적 권리 보호’ ‘진실추구’ 등 기자와 취재원간에 흔히 일어나는 논쟁의 소재는 대부분 상대적인 가치나 개념을 갖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도널드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이 월스트리트저널에 공개한 공직자에 대한 경구 중 언론에 대한 규칙은 언론과 공직자 관계에 대한 나름대로의 지혜를 담고 있어 관심을 끈다. 그는 우선 “언론에 비보도전제발언(Off the Record)이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 공직자들은 걸핏하면 ‘국익’운운하며 비보도를 요청할 뿐만 아니라 어떤 때는 그것조차 전제하지 않고 한참 얘기를 하다가 느닷없이 비보도를 요구하기도 한다. 과거 군사독재시절에는 기자들에게 “보도는 하지말고 알고만 있어라”면서 민감한 시국 사건 같은 것을 흘리기도 했다.

▷럼스펠드 장관은 또 기자에 대한 답변은 “알고 있어 말하겠다” “알고 있지만 말 못한다” “모른다”는 세 가지뿐이라고 했다. 여기에는 미국사람들이 흔히 쓰는 ‘노 코멘트(No Comment)’라는 말도 함께 포함되어야 할 것 같다. 엄격히 따져보면 ‘노 코멘트’는 ‘알고 있는지’ ‘모르는지’조차 밝히지 않는 용어다. 어떻든 럼스펠드 장관의 경구에는 언론과 공직사회가 지켜야 할 ‘신사도’와 솔직성이 엿보인다.

▷한나라당의 김영일(金榮馹)의원이 한창 문제가 되고 있는 안기부 선거자금에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이 무슨 관계가 있는 것처럼 얘기해 정치권이 또 벌집 쑤신 듯하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강삼재(姜三載)한나라당의원이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다고 하자 김의원은 정확한 얘기를 들은 것이 아니라 종합적으로 추정한 것뿐이라고 발뺌한다. 누군가는 교묘히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거짓말이 난무하는 우리의 정치판은 럼스펠드 장관의 경구와는 전혀 상관없는 곳이다.

<남찬순논설위원>chans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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