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 타워]라이벌 기업간 전략적제휴 급물살

  • 입력 2001년 1월 26일 18시 35분


지난해 9월 말 백두산 중턱. 대한항공 이종희 부사장과 아시아나항공 박찬법 부사장(현 사장)은 백두산 등정에 나선 각계 인사 100여명 틈에 끼어 땀을 뻘뻘 흘렸다.

서울에서는 항공업계 라이벌의 최고경영자로서 한치의 양보도 없이 경쟁해야 하는 처지. 하지만 상대방의 가쁜 호흡을 느끼며 백두산을 함께 오르다 보니 자연스레 의기가 투합했다.

이부사장이 “국내 온라인 여행시장이 형성되는 초기 단계인데 외국기업들의 공략이 본격화되고 있다”며 “우선 이 분야부터 두 항공사가 협력하는 게 어떠냐”고 운을 뗐다. 박부사장은 “늘 그 문제로 고민했던 터”라며 “귀국해서 실무자들에게 검토해 보도록 지시하겠다”고 화답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첫 번째 온라인여행 제휴는 이렇게 시작됐다.

경제여건이 나빠지고 기업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는 ‘적과의 동침’이 확산되고 있다. 기업들은 △외국업체로부터 국내시장을 지키고 △후발업체의 추격을 공동으로 따돌리거나 △비용절감을 통해 수익성을 유지하기 위해 경쟁업체와의 전략적 제휴에 앞다퉈 나서고 있다.

▽눈길 끄는 두 항공사 제휴〓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두 회사가 자본을 대는 여행포털 법인을 상반기 중에 설립할 계획. 재계의 관심은 이같은 제휴가 항공업무 전반으로 확대될지에 쏠리고 있다.

두 항공사는 대통령 전용기 운항에서 국제선 신규취항에 이르기까지 현안이 있을 때마다 사사건건 대립해온 처지. 협력 분위기가 조성된 만큼 ‘상대방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라는 식의 소모적인 경쟁은 일단 수그러들 것으로 보인다.

심이택 대한항공사장은 “하루 운항 횟수가 두 세편에 불과한 국내 노선은 사무소와 장비, 인력을 공유하거나 아예 특정노선을 한 회사로 몰아주는 방법을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 항공노선은 서울∼부산 등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는 적자를 면치 못하는 상태이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수익도 나지 않는 지방공항에서 항공권 판매와 승객안내 업무를 따로 하는 것은 낭비”라며 “조업 일원화가 이뤄지면 비용절감 효과가 상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 일각에서는 성수기 때 항공기가 남아도는 항공사가 항공기와 승무원을 통째로 빌려주는 형태의 협력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점치고 있다.

▽전 업종으로 파급되는 전략적 제휴〓삼양사는 유방암 치료제 ‘제넥솔’을 설탕업계 경쟁자인 제일제당의 유통망을 통해 팔고 있다. 주류업계 맞수인 OB맥주와 하이트맥주는 500㎖와 640㎖짜리 빈병을 함께 재활용한다.

공급과잉으로 고전 중인 석유화학업계는 원료를 사실상 공동 구매하거나 저장하는 방식으로 채산성 악화에 대비하는 케이스. 대산단지의 삼성과 현대는 나프타 등 원료를 넉넉히 비축한 업체가 모자라는 쪽에 꿔준 뒤 나중에 되받는 식으로 제휴하고 있고 여천단지 입주업체들은 원료 저장용 탱크를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다.

<박원재·하임숙기자>parkwj@donga.com

▼출범석달 화섬통합법인 ‘휴비스’▼

지난해 11월 ‘적과의 동침’ 최종 단계인 합병을 통해 탄생한 휴비스. SK케미칼과 삼양사의 섬유사업 부문이 합쳐진 이 회사는 출범 뒤 세달 동안 통합의 내실화에 역량을 집중해왔다. 지금까지의 평가는 ‘조직통합은 성공, 시너지효과는 과제’로 요약된다.

서로 다른 조직의 통합에서 가장 우려되는 것이 문화의 충돌인 만큼 휴비스는 조심스럽게 추진했다. 사장은 SK 출신 조민호(趙民鎬)씨가, 부사장은 삼양사 출신 방영균씨가 맡고 있다. 또 인사 회계 재무 등 주요 부서에도 양사의 인력이 절반씩 포진해 있다. 서로 다른 급여체계와 복리후생 제도의 경우 양사 중 높은 쪽을 채택했다. 아직까지는 물리적 결합 단계지만 시일이 지나면서 화학적으로도 융합될 것이라는 게 회사 관계자의 전망.

통합에 따른 경제적 시너지효과는 아직 구체적으로 확인하기 어렵다. 휴비스의 탄생 배경이 우리나라 화섬업계의 과잉투자 및 과잉생산이었는데 이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것.

물론 휴비스는 생산 구매 연구 판매 등에서 중복투자의 요소를 걷어냈다. 양사에서 추진해온 비슷한 연구분야를 통일했고 서로의 고급기술을 공유했다. 중복거래처도 통일했다. 이를 통해 연간 900억원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휴비스는 내다보고 있다. 중요한 것은 시장상황. 그러나 화섬업계 사장단이 최근 회의를 열어 자율감산을 합의할 만큼 시장이 좋지 못한 것이 휴비스 성공의 최대 걸림돌이다.

<하임숙기자>artem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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