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대근/복제인간

  • 입력 2001년 1월 26일 18시 35분


영화의 주인공은 비행기 조종사. 그는 생일을 맞아 깜짝 파티를 기대하며 집으로 돌아온다. 식구들이 자신을 위해 어떤 프로그램을 준비했을까. 그러나 설렘도 잠시, 그는 곧 혼란에 빠진다. 집안에선 이미 자신과 똑같은 모습의 남자가 가족과 함께 파티를 즐기고 있는 게 아닌가. 그는 결국 자신이 복제됐다는 사실을 알고 자신을 복제한 무리와 싸워 나간다. 지난해 말 우리나라에서도 개봉된 미국의 공상과학영화‘6번째 날’은 생명복제가 판을 칠지도 모를 가까운 미래를 그렸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다.

▷사실 인간복제가 영화 속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96년 영국에서 복제 양(羊) ‘돌리’가 태어나면서 인간복제가 세계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수정란을 이용한 배아복제, 생식세포 대신 성장한 체세포를 이용한 방법 등이 잇따라 학계에 보고됐다. 특히 인간의 배아복제는 심장병 당뇨 뇌졸중 등 난치병 극복의 지름길이라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배아란 수정후 14일 전후까지의 세포덩어리로 여기에서 어떤 조직으로도 성장할 수 있는 ‘줄기(幹)세포’를 추출해 난치병 치료에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 각국은 종교적 윤리적 이유로 배아복제를 전면 금지하고 있다. 배아복제는 인간의 존엄성을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엊그제 영국 상원이 세계 최초로 연구 목적의 인간 배아복제를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셰필드대학 연구팀은 이달말 이 법안이 발효되면 인간배아 복제 신청서를 제출할 계획이라고 한다. 비록 연구기간이 9개월로 제한되긴 하지만 이 분야에선 엄청난 변혁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도 이 분야의 연구는 세계적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몇 년 전 이미 복제 젖소가 태어났고 냉동 수정란에서 심근세포를 만들어 냈다는 보고서도 나왔다. 그러나 이에 따른 ‘법률장치’는 아직 갖추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말 보건복지부가 ‘생명과학보건안전윤리법’ 시안을 내놓았으나 생명공학연구를 위축시킬 소지가 크다는 학계의 반발 등으로 올 상반기내 국회상정도 불투명한 실정이다. 국가의 이익을 고려해 신중한 결론을 내려야 할 문제다.

<송대근논설위원>dk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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