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록의 독서일기]"역사는 박제가 아닙니다"

입력 2001-01-15 15:50수정 2009-09-21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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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방송등 매스미디어를 통해 엄연한 역사적 사실까지 왜곡하던 시절이 있었다. 80년대초 엄혹한 군사정권, 권부의 입맛에 맞지않으면 오직 탄압과 제재가 있었을 뿐이다. 대하 TV사극 <조선왕조 500년>은 '용비어천가'를 부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중도하차되었다.

극본작가 신봉승, 알만한 사람들은 이 이름 석자를 기억하리라.

그는 한마디로 '조선왕조실록'에 미쳐있던 작가였다.

48권에 이르는 방대한 역사소설 <조선왕조 5백년>을 펴냈으며 <소설 한명회>(7권) <왕건>(3권)등을 지었다.

역사는 결코 과거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 사실 하나하나가 곧 '미래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이미 있었던 지난날의 일을 적어서 앞날의 일을 경계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초중등과정서 역사교육을 중히 여기는 이유가 또한 여기에 있다. 배워 익힐만한 체험적 '가르침의 보고(寶庫)'를 역사에서말고 또 어디에서 찾을까. 작가는 그런 큰 뜻을 가지고 평생을 부지런히 역사책을 뒤지고, 그 의미를 드러내기에 바빴다.

최근들어 TV사극이 큰 인기를 떨치고 있다. <용의 눈물> <왕과 비> <허준> <태조 왕건> <목민심서>등이 그 예다. 한 두해전인가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이라는 책이 서점가를 장식한 적도 있었다. 이런 붐을 일으키는데 있어 그의 공(功)은 결코 적지 않다.

'밀레니엄 원년'이라고 부산을 떨었던 2000년 끄트머리에 펴낸 신봉승의 역사에세이 <국보가 된 조선 막사발>(삶과꿈 펴냄·366쪽 9000원)은 우리가 마음에 새겼던 새천년의 다짐을 새롭게 한다는 의미에서 또한 값지다.

역사에세이 편편에는 역사에 대한 그의 해박한 지식과 경륜이 담겨 있다. 모두 69편의 글이 실려있는데, 책제목이 된 '막사발'이야기를 들여다보자. 막사발이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흔하게 '막'(함부로) 쓰는 투박한 질그릇이다. 이가 빠지면 금세 개밥그릇신세가 된다. 그러나 400여년전 임란때 잡혀간 우리 도공들이 일본땅에서 빚은 막사발 42점, 그중 한점이 일본국 국보로 지정돼 있다 한다. 막사발의 가치를 눈밝혀 본 일본인들은 이제 '도자기 대국'이 되어 있다. 우리는 여기서 역사의 아이러니를 실감한다. 우리 스스로 그 가치를 깨닫지 못했을 때의 부끄러움, 허탈을 맛보게 된다. 비단 막사발뿐이랴. 백제의 관음미륵상은 또 어떠한가. 역사에서 올바른 교훈을 얻지 못하면 그만한 보상을 혹독하게 돌려받는다. 작가는 이 점을 줄기차게 말하고 싶은 거다.

그는 문화적으로 드물게 보는 '일본통' 知日派이다. 이 책 1장에서는 일본인의 겉마음과 속마음을 여실하게 파악한 통찰력을 엿볼 수 있다. 2장에서는 조선조 임금들의 고뇌와 신하들의 도리에 대해 설파하고 있다. 정치가 몹시 어지러운 오늘날, 선조들의 일화(逸話)에서 여유와 지혜를 빌어오면 어떨까. 4장, 5장은 외곬로 치달았던 그의 역사공부와 역사철학의 일단 그리고 생활속의 담담한 수상(隨想)이 펼쳐진다.

1933년 생. 시인 조병화님은 책 들머리에 그를 찬(讚)하면서 그의 호(號)를 빌어 "초당은 실로 살아있는 역사"라고 했다. 그 이유로 "인간사, 어두운 역사를 하나하나 밝게,소상히, 예날 그대로 끄집어 올려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어제와 오늘을 생생히 이어주는 투명한 지성"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토인비나 E H 카등의 어렵고 딱딱한 역사책만 찾을 일 아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이 책을 들고 상식도 넓히자. 그러나 진지하게.

최영록<동아닷컴 기자> yr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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