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유병화/'노근리 배상' 이제부터 시작

입력 2001-01-14 18:48수정 2009-09-21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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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7월 발생한 노근리 사건은 50년 가까이 지난 1999년 9월 29일 AP통신 보도를 계기로 한국과 미국 정부의 본격 조사를 받게 되었다. 사건 내용은 6·25전쟁 초기인 1950년 7월 26일 미군의 인솔 하에 피란하던 충북 영동군 주민들이 노근리에서 미군 항공기의 폭격을 받았고, 7월 26∼29일 인근 수로 및 쌍굴에서 미군에 의해 200여명이 살상되었다는 것이다.

전쟁 초기에 북한군에 밀려 패배를 거듭하던 미군 24사단이 대전 함락 후 막대한 손실을 입어, 미군 1기병사단으로 교체되었는데 바로 미군 1기병사단 7연대 2대대에 의해 노근리 사건이 일어났다.

AP통신의 이 사건 진상에 대한 첫 보도 이후 한국과 미국 양국의 대통령이 진상 규명 의지를 표명함에 따라 1년이 넘는 기간에 걸쳐 양국 정부는 많은 인원을 투입해 현장 목격자 참고인들의 증언을 듣고 현장 검증을 하였으며 노근리 참전 미군 7000여명을 추적, 175명의 증언을 청취했고 미국 내 여러 곳에 분산돼 있는 문서 보관소들의 자료를 수집 검토했다.

이러한 조사 활동 끝에 12일 공개된 양국 공동발표문은 절박하게 후퇴 중이던 미군에 의하여 노근리 부근에서 상당수의 피란민이 억울하게 살상되었다는 진상을 인정하였으며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공식으로 유감을 표시했다.

한미 양국의 공식 조사 결과는 우선 노근리 비극의 실상을 인정하였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 피해자들이 50년 가까이 이러한 참상에 대해 제대로 권리 주장을 하지 못했던 것은 우리 역사의 불행한 비극이다. 둘째로 피해자들이 사법적 절차를 통해서 보다 구체적인 진실을 밝히고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근거와 자료를 마련하였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결과로 볼 수 있다.

다만 발표문의 내용을 보면 미군측의 위법 사실이 분명한데도 미국이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을 기피한 것이나 배상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유감스럽다. 물론 미국 대통령이 직접 유감을 표시하고 추모비 건립과 추모장학기금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피해자들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미국측의 노력이기는 하지만 결코 충분하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공동발표문은 노근리 비극의 종결이 아니라 해결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미군측의 사격 명령을 추정하게 하는 많은 증거가 있을 뿐만 아니라 설사 그러한 상급 기관의 명령이 없었다고 해도 노인이나 어린이들을 다수 살상한 미군 병사들의 사격 행위는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불법행위이며, 미군의 불법행위는 곧 미국 정부의 배상 책임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사실 개인이 이런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다고 해도 50년 전에 있었던 방대한 사건을 추적해 진상을 밝힌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런데 이번 조사를 통해 노근리 비극의 실체가 상당 부분 밝혀졌고 구체적 증거와 증언이 확인되었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사법적 절차를 통해 배상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커졌다고 본다.

유병화 <고려대 교수·국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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